세월호 특별법 위로 힐링 누구나 필요하고 소외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야 말로 절실하다고 필요하다고, 기자들부터 정치인 종교인 교육인 기업인 작가 등등 그 외 온 국민이 입으로는 얘기한다. 하지만 아귀다툼처럼 그 방면에 전문가인 것처럼 떠들어 대지만 다들 자신의 사회적 포지션에 따른 잇속 챙기기에 열광할 뿐 힐링을 하라고 책을 내고 강연을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그런 것들로 돈벌이를 하고 사회적 지위를 유지한다. <할 수 있는 자는 그것을 하고, 그렇지 못한 자 할 수 없는 자는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누군가는 얘기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가르치는 자는 너무나도 많으며 몸소 말과 행위와 에너지를 써서 실제 그 일을 행하는 자는 찾기 힘들다. 이제는 온 국민이 힐링 전문가가 되어 힐링의 방법을 설파할 뿐이다.(이 글을 쓰는 나 또한 이에서 열외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실제 힐링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지치고 힘들고 부대끼는 영혼에 안식처가 되어주는 사람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너도 나도 힐링강사가 되어 힐링의 필요성과 방법을 설파하고 다니고 그럴듯하게 여러매체에 실리다보니 힐링이 사회적으로 명망있고 대단한 권위가 있으며 위대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어려운 것은 아닐까라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게 된 것만 같다. 그러다보니 찌르찌르 미찌르의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것과 같이 굉장히 어렵고 험난하고 미지의 세계에 가야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정작 파랑새는 가장 가까운 집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슨 권위와 법과 같은 사회적 합의 임팩트 그런 것이 섞여있는 그런 대우 대접 서비스등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손을 꼭 잡아준다면,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눈물을 닦아준다면 오히려 수치스러움을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세상의 모든은 아닐지라도 대부분 보통의 가정에서 엄마가 자식들에게 위로와 보듬어줌을 행할 수 있다. 이는 사랑이 있기에 가능하다. 어떤 엄마는 커리어우먼이기도 할 것이고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일수도 있고 살림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사회적 지위가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랑이 전제되어있기에 힐링을 잘하는 역할을 하는 아픈 곳을 보듬어주는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철이 든 사람이라면 자식들이 부모의 아픔을 힐링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사랑이 전제되어있기에 가능 한 얘기이다. 자식의 사회적 지위와 그밖의 외적인 요건들은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학교에서 반에 무슨 문제나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담임선생님의 정리와 훈육이 있으면 대체로 해결이 되곤 하는데 이처럼 사람들은 누가 봐도 자신들보다 대단하고 놀라운 사람들에게 받은 위로의 말과 권위 있는 사람의 위로에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것만 같아 아쉬운 점도 있다. 사회적 지위가 보잘 것 없거나 어린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들으면 니까짓게 감히 나를 위로해? 그런 속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위로와 애도의 표현에 진심을 담았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런 것에는 존중받지 못하고 교황님(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항상 낮은 곳을 자처하였지만 스스로의 권위와 명예는 반대로 계속해서 올라가는 삶을 살아오셨다고 알고 있다)이라는 권위자에게 위로의 말을 듣자 비로소 처음으로 존중받는 느낌이라는 소감을 발표한다. 어쩌면 내가 힐링의 개인적 심리역동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 합의와 해법에는 비중을 적게 두고 있어 이런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애도와 위로에는 힐링을 받지 못하다니 그런 부분은 아쉬울 따름이다.
한편으로는 요즘같이 분업화되고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고 밥벌이를 하고 부대끼며 삶을 살아가게 되는 한국사회에서 힐링의 전문가, 상담사나 의사나 사회복지사 종교인 교육인 정치인 등 전문가에게 받아야 제대로 받은 힐링이지 하는 생각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나 역시 그런 전문가들은 그런 일들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야만 전문가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사람들은 그런 힐링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며 사람들의 아픔을 신경써서 돌봐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능력과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들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들과 사회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삶을 신경써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일들을 분업화된 현대 한국사회에서 전문가인 그들이 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1차적으로 그리고 사회를 미시적으로 볼 때 상처가 있는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은 가족과 친구 동료 애인이 되겠다. 이 경우는 순수한 사랑으로 금전거래 없이도 아니면 밥 한끼나 커피한잔 맥주나 소주 한잔등으로도 서투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속에서 애 쓸 수가 있다. 하지만 분업화된 사회에서 전문가라고 불리고 권위를 가진 사람들 그들은 전문가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사랑도 있어야겠지만 임금을 받으면서 사회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어려운 일이고 전문성이 필요하기에 사람들은 그들 전문가를 존중하며 많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그들이 그런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이는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특히나 정치인들은 이런 사안에 대해 매뉴얼도 없이 처음 접하는 업무인 듯 우왕좌왕하며 능력 밖의 일이라고 세월호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사후처리를 말끔히 못 해낸다면, 전문가라는 호칭과 직위와 임금을 뱉어내야 할 것이다. 업무 수행할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고 자기 일에 소홀하는 사람이 왜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가?
2014.08.18.까르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