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발표할 주제는 <나를 찾아줘>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대로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이를 토대로 행복해지자라는 내용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결혼생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겉으로만 겉으로 보이는 허울만 행복해 보이는 쇼윈도부부가 된 모습이 안타까웠는데요. 왜 인생은 비극으로 묘사될 때가 많은지도 궁금했습니다.
소설가 양귀자씨가 실제 겪은 이야기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양귀자씨가 카페에 앉아 책을 보다가 우연히 중년여성 두 분이 얘기나누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참 서로 웃으면서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분이 먼저 자리를 뜨게 되자 홀로 남겨진 친구가 갑자기 탁자에 엎드려 울더라는 겁니다. 작가가 그걸 보고 추측을 하기로는, 아마 저 여성분이 뭔가 힘든 일이 있는데 친구한테는 말하지 못하고 괜찮은 척 자신의 허울 좋은 이야기를 하고서 혼자 남겨지니까 어떤 비참함, 고독을 느끼고 우는게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답니다.
우리는 행복한 척 의연한 척 하려고 할 때가 많은데 정작 본인의 마음이 화가 나거나 불편할 때는 왜 그런지 잘 살펴보지 않고 회피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성찰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대로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스스로가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 보입니다. 작고 보잘 것 없을 지도 모르지만 자신만의 인생관과 지향하는 바를 고민하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게 정답이라고 하니까 그에 휩쓸려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때가 많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정신분석은 어떤 과정인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찾기 위해 자신의 역사, 더불어 부모의 역사까지 생각해 보고 잘못된 인식을 깨닫고 점검하는 겁니다. 말로는 간단한데 실제로 이 작업을 해보면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되돌아보기 힘든 상처와 마주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내안의 어두운 기억과 무의식을 스스로 감싸 안고 직면 할 수 있어야 건강한 자아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며칠전 신문을 보니까 서울시가 건설노동자들을 위한 심리상담을 통해 안전사고를 줄인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처음에 20년넘게 일해 온 남성분이 상담을 받을 때 내가 뭐 정신병자도 아닌데.... 하면서 반신반의했는데 1시간 가량 상담받고 나올 때는 눈물까지 흘리며 ‘내가 이런 말까지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속내를 털어놓은 것 자체가 큰 위안이 됐대요. 우리가 어디서도 얘기하지 못했던 심리적 고통에 대해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단기적인해법을 얻을 수 있지만 정신분석은 위로를 기대하기보다는 여기에서 더욱 나아가 스스로 문제와 원인을 알아가도록 일깨우는 방식이라 근본적인 내적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는 2차세계대전 때 정신분석이 완전히 대중화되어서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이나 가족을 상실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6.25전쟁, 월남파병, 민주화 과정 등 역사적 굴곡이 많은데 그동안 심리치료나 정신과 치료에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2000년도가 되어서야 실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심리적인 문제는 자녀가 떠안게 되고 3대가 되면 신경증이 된다고 합니다. 제가 속해있는 세대는 역사적으로 체험한 큰 트라우마가 없는 세대지만 전쟁이나 가난에 대한 공포를 가진 우리 부모세대에서 해결하지 못한 심리적 문제가 다음세대까지 남아있을 수 있기에 심리치료에 관심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부모가 어렵게 자수성가해서 부족함 없이 귀하게 키운 자녀가 가난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심리적 문제를 자녀가 떠안게 된 일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은 살면서 작은 심리적 고통을 느낄 때도 쉽게 접근하여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보통 정답이라고 정해둔 길을 바삐 앞으로만 달려가는 성찰없는 삶, 획일적인 삶에서 조금 벗어나 약간 다른 길을 가거나 늦어지더라도 정신분석을 통해 마음이 평평해지고 자기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인생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보험에 든 것처럼> 참고로 저는 이 우체국 보험 영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해 나갈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 글은 절친의 원고를 수정하고 편집을 약간 하고 올리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