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대신 눈에 띄는 구절들을 발췌하는 것이
원작의 느낌을 잘 전달할 것만같고
본문전체를 읽어보고싶은 생각도 하게 되어
책도 직접 찾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 작업을 해봅니다.
블로그 <숨어있기 좋은 방>에서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이 "독후감 대신 인상깊은 구절 발췌정리하기" 작업이
한동안 지속되다 보면
이 블로그에 멋진 서재가 하나 마련되어지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에는 언제나 애정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입니다>
발췌한 분량은 많지만 글이 어렵지 않아 글은 술술 읽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옮김
제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94page
과거에 ‘오리지널이었던’것을 콕 집어내 현재의 시점에서 분석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일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라질 것은 이미 사라져 없어졌기 때문에 뒤에 남은 것만 집어내 마음 놓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실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시대적으로 존재하는 오리지널한 표현 형태에 감응하고 그것을 현재진행형으로 정당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눈에는 불쾌하고 부자연스럽고 비상식적인-경우에 따라서는 반사회적인-양상을 띈 것처럼 보이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은 그저 단순히 어리석은 것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어떤 경우든 그것은 종종 경악과 동시에 쇼크와 반발을 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능적으로 혐오하고, 특히 기성의 표현 형태에 푹 잠겨 그 속에서 지반을 구축해온 기성 권력establishment에게는 타기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이 다져둔 지반을 그것이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틀스는 현역으로 연주할 때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이건 오히려 특수한 사례일 것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비틀스의 음악이 그 당시부터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음악은 일과성의 대중음악으로 여겨졌고, 더구나 클래식에 비하면 가치가 한참 떨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기성 권력에 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비틀스의 음악을 불쾌해했고 그런 기분을 기회 있을 때마다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특히 초기의 비틀스 멤버가 채용한 헤어스타일이나 패션은,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지만, 큰 사회문제로 어른들의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비틀스의 레코드를 파기하거나 태우는 시위운동도 각지에서 열성적으로 펼쳐졌습니다. 그들의 음악의 혁신성과 높은 수준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정당하고도 공정한 평가를 받은 것은 오히려 한 세대를 건너뛴 다음이었습니다. 그들의 음악이 흔들림 없이 ‘고전’화했기 때문입니다.
밥 딜런도 1960년대 중반에 어쿠스틱 악기만을 사용하는 이른바 ‘프로테스트 포크송’스타일(그것은 우디 거스리, 피트 시거 같은 앞선 이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을 버리고 전자악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종래의 지지자 대부분에게서 ‘유다’‘상업주의로 전향한 배신자’라는 악의적인 욕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전자악기를 사용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의 음악을 시대별로 듣다 보면 그것이 밥 딜런이라는 자기 혁신력을 갖춘 크리에이터에게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오리지낼리티를 ‘프로테스트 포크송’이라는 협의의 카테고리의 감옥에 억지로 밀어넣으려 했던 당시의 (일부)사람들에게 그것은 ‘내통’이나 ‘배신’일 뿐인 것으로 비쳤겠지요.
비치 보이스도 현역 밴드로서 분명 인기를 누렸지만 음악적 리더인 브라이언 윌슨은 오리지널한 음악을 창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중압감 때문에 신경이 병들어 어쩔 수 없이 장기간에 걸친 실질적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걸작 <펫 사운즈>이후 그의 치밀한 음악은 ‘해피한 서핀 사운드’를 기대하던 일반 청중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점점 복잡하고 난해한 것이 되어갔습니다. 나도 어느 시점부터 그들의 음악에 공감할 수 없어 점점 멀리했던 사람입니다. 지금 다시 들어보면 ‘아, 이런 방향성을 가진 훌륭한 음악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솔직히 그 ‘훌륭함’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오리지낼리티는 그것이 실제로 살아 움직일 때는 좀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이렇다는 얘기입니다만, 특정한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1)다른 표현자와는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사운드든 문체든 형식form이든 색채든)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들으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대체적으로)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2)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 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3)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모든 항목을 확실하게 다 채워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1)과 (3)은 충분히 통과했지만 (2)는 조금 약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2)와 (3)은 충분히 통과하지만 (1)은 조금 약하다는 경우도 있겠지요. 하지만 ‘많은 적든’이라는 범위 안에서 이 세가지 항목을 만족시키는 것이 ‘오리지널’의 기본적인 조건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해보면 알 수 있듯이 (1)이야 어찌 되었든 (2)와 (3)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의 경과’가 중요한 요소입니다. 요컨대 한 사람의 표현자가 됐든 그 작품이 됐든 그것이 오리지널인가 아닌가는 ‘시간의 검증을 받지 않고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어느 시기에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진 표현자가 불쑥 튀어나와 세간의 강한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만일 그/그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면, 혹은 싫증이 나버렸다면, 그/그녀는 ‘오리지널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단순히 ‘한 방’으로 끝나버립니다.
실제로 나는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그런 사람들을 봐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주 눈에 띄게 참신해서 ‘와아’하고 감탄하지만 어느샌가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심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사람도 있었어’라고 언뜻 생각나는 것뿐인 존재가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마 지속력이나 자기 혁신력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얘기겠지요. 그 스타일의 질을 논하기 전에 어느 정도 몸집을 가진 실제 사례를 남기지 않고서는 ‘검증 대상에 오르지도 못하게’됩니다. 여러 개의 샘플을 펼쳐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지 않고서는 그 표현자의 오리지낼리티가 입체적으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베토벤이 만일 평생 동안 9번 심포니 하나밖에 작곡하지 않았다면 베토벤이 어떤 작곡자였는지, 그 상이 잘 떠오르지 않겠지요. 이 거대한 곡이 어떤 작품적인 의미가 있고 어느 정도의 오리지낼리티를 가졌는지도 그 단체(單體)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심포니만 해도 1번에서 9번까지의 ‘실제 사례’가 일단 연대기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9번 심포니라는 음악이 가진 위대성을, 그 압도적인 오리지낼리티를, 우리는 입체적이고 계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5회 자, 뭘 써야 할까?
128page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E. T.>에서 E. T.가 창고의 잡동사니를 쓸어 모아 그걸로 즉석 통신 장치를 만들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기억나시는지요. 우산이라든가 전기스탠드라든가 식기라든가 전축 등등, 한참 오래전에 본 영화라 자세한 건 잊어버렸지만 그 자리에 있던 가정용품을 이것저것 적당히 조합해 척척 만듭니다. 즉석에서 척척 만들었어도 실은 몇천 광년 떨어진 모성(母星)과 연락이 가능한 본격적인 통신기입니다. 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보고 크게 감탄했었는데, 뛰어난 소설이란 분명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재료 그 자체의 질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거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매직magic’입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밖에 없더라도, 간단하고 평이한 말밖에 쓰지 않더라도, 만일 거기에 매직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것에서도 놀랍도록 세련된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우리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창고’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매직을 구사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실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E. T. 가 훌쩍 찾아와 “미안하지만 너의 창고 속 물건 몇 가지를 쓰게 해주겠니?”라고 말했을 때, “좋아, 뭐든 마음대로 써”라고 덜컹 문을 열어 보여줄 만한 ‘잡동사니’의 재고를 상비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138page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게 삼십오년 전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건 소설이 아니다’ ‘이런 건 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선행하는 세대에게서 엄격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이 어쩐지 부담스러워서(라고 할까, 귀찮아서) 나는 상당히 오랜 기간 일본을 떠나 외국의 잡음 없는 조용한 곳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소설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혹시 내가 잘못하는 건가라는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고 딱히 불안을 느낀 적도 없습니다. ‘실제로 나는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데 뭐, 이렇게 쓰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잖아. 그게 뭐가 나빠?’하고 모른 척 넘어가버렸습니다. 아직은 불완전할지도 모르지만 나중에는 좀 더 제대로 된 수준 높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시대도 변화를 달성할 것이고 내가 해온 일은 틀리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증명될 것이다, 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어째 좀 낯 두꺼운 소리 같습니다만.
제7회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業
182page
세간의 많은 사람들은, 작가가 하는 일은 책상 앞에 앉아 글씨만 쓰면 되는 것이니까 체력은 관계가 없을 것이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릴 정도의(혹은 종이에 펜을 내달릴 정도의) 손가락 힘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란 애초에 불건강하고 반사회적, 세속적인 존재라서 건강유지나 피트니스는 필요 없다는 견해도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얘기는 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 것은 스테레오타입의 작가 이미지, 라고 간단히 일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아실 텐데, 날마다 대여섯 시간씩 책상의 컴퓨터 화면 앞에(물론 귤 박스 위 원고지 앞이라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혼자 앉아 의식을 집중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면 웬만한 체력으로는 도저히 당해내지 못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그것도 그리 어려운 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십 대, 삼십 대...... 그런 시기에는 몸에 생명력이 넘치고 육체도 혹사당하는 것에 불평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집중력도, 필요하다면 비교적 쉽게 일깨울 수 있거, 그것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젊음이란 실로 멋진 일입니다(다시 한 번 그떄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좀 곤란하지만). 그러나 극히 일반적으로 말해서 중년기로 접어들면 유감스럽게도 체력은 떨어지고 순발력은 저하하고 지속력은 감퇴합니다. 근육은 시들고 군살이 몸에 붙습니다. ‘근육은 빠지기 쉽고 군살은 붙기 쉽다’는 것이 우리 몸의 하나의 비통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그 같은 감퇴를 보완하려면 체력 유지를 위한 정기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이 불가결합니다.
또한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얘기지만) 그에 따라 사고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사고의 민첩성, 정신의 유연성도 서서히 상실됩니다. 나는 어느 젊은 작가와 인터뷰할 때,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좀 극단적인 말이었고 예외도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군살이든, 메타포로서의 군살이든. 많은 작가들이 그런 자연스러운 쇠퇴를 문장 기법의 향상이나 성숙한 의식 같은 것으로 보완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제8회 학교에 대해서
215page
만일 인간을 ‘개적인 인격’과 ‘고양이적인 인격’으로 분류한다면 나는 거의 완벽하게 고양이적인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향우’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좌향좌’를 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비뚤어진 짓을 하면서 이따금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좋든 나쁘든 그것이 나의 타고난 천성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원래 다양한 천성이 있어도 괜찮은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일본의 교육 시스템은, 내가 보기에는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개적인 인격’을 만드는 것이, 때로는 그것을 뛰어넘어 단체로 졸졸 목적지까지 끌려가는 ‘양羊적인 인격’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교육뿐만 아니라 회사나 관료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사회 시스템 자체에까지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것은-‘수치 중시’의 경직성, ‘기계적인 암기’의 즉효성, 공리성 지향-다양한 분야에서 심각한 폐혜를 낳고 있습니다. 어느 시기에는 그런 ‘공리적’ 시스템이 분명 잘 돌아갔습니다. 사회 전체의 목적이나 목표가 대체적으로 자명했던 ‘Go, Go!’의 시대에는 그런 방식이 적합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후의 부흥기가 끝나면서 고도 경제성장은 과거의 일이 되고, 거품경제가 어이없이 파탄이 나버린 뒤, 그런 ‘모두 함께 선단을 짜고 목적지를 향해 일념으로 돌진하자’는 식의 사회 시스템은 그 역할이 이미 끝나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목적지는 더 이상 단일한 시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 나처럼 제멋대로인 성격의 인간들만 있다면 그것도 좀 난감하겠지요. 하지만 앞서 든 비유로 말하자면, 큰 주전자와 작은 주전자는 주방에서 능숙하게 병용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용도에 맞게, 목적에 맞게, 그것들을 잘 구분해서 쓰는 것이 인간의 지혜입니다. 혹은 건전한 양식common sense입니다. 다양한 유형의, 다양한 시간성의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이 잘 조합되었을 때 비로소 사회가 원활하게, 좋은 의미에서 효율적으로, 돌아갑니다. 간단히 말하면 ‘시스템의 세련화’라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회에나 물론 합의라는 건 필요합니다. 그게 없어서는 사회는 성립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합의에서 얼마간 벗어난 곳에 자리한 비교적 소수파의 ‘예외’도 그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혹은 분명하게 시야에 넣어야 합니다. 성숙한 사회에서는 그런 균형이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런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느냐에 따라 사회에 폭과 깊이와 내성內省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내가 본 바로는, 현재 일본에서는 그런 쪽으로 향하는 방향키가 아직 충분히, 적절히 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2011년 3월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인데, 그 뉴스 보도를 따라가다 보면 ‘이건 근본적으로는 일본의 사회 시스템 자체가 몰고 온 필연적인 재해(인재) 아닌가’라는 암담한 마음이 듭니다. 아마 여러분도 거의 똑같은 생각을 하시지 않을까요.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해 수만 명의 사람들이 정든 고향에서 쫓겨나고 다시 돌아갈 전망조차 세울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렸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 같은 상황을 몰고 온 것은 직접적으로는 통상적인 상정 범위를 뛰어넘은 자연재해이며 몇 가지가 겹쳐진 불운한 우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런 치명적인 비극의 단계까지 떠밀려 간 것은 내 생각에는 현행 시스템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결함 때문이고 그것이 낳은 왜곡 때문입니다. 시스템 안에서의 책임 부재이자 판단 능력의 결락 때문입니다. 타인의 아픔을 ‘상정’하는 일이 없는, 상상력을 상실한 잘못된 효율성 때문입니다.
‘경제성이 좋다’는 것만으로, 거의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원자력발전이 국가정책으로 우격다짐 식으로 추진되고 그 안에 잠재된 리스크(혹은 실제로 다양한 형태로 간간히 현실화되었던 리스크)는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은폐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그에 대한 청구서가 날아온 것입니다. 사회 시스템의 근간에 스며든 그런 ‘GO, GO!’적인 체질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문제점을 밝혀서 밑바탕부터 수정해나가지 않는 한, 그와 유사한 비극이 다시 어딘가에서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222page
내가 어렸을 때는 사회 자체에 ‘발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인과 제도가 다투는 듯한 문제도 그 공간에 쭉쭉 흡수되어 그다지 큰 사회적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사회 전체가 둥글둥글 굴러갔기 때문에 그 동력이 다양한 모순이나 욕구불만을 삼켜 들였습니다. 말을 바꾸자면, 난처할 때 도망칠 수 있는 여지나 틈새 같은 것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도성장 시대도 끝나고 거품경제 시대도 끝나버린 지금은 그런 피난 공간을 찾아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큰 흐름에 내맡기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식의 대략적인 해결 방법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습니다.
‘도망칠 곳이 부족한’ 사회가 몰고 온 교육 현장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든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아니, 순서대로 말하자면 그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만한 장소를 우선 어딘가에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어떤 장소인가.
개인과 시스템이 서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온건하게 협의하면서 각자에게 가장 유효한 접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가능한 장소입니다. 말을 바꾸자면,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곳에서 자유롭게 팔다리를 쭉쭉 펴고 느긋하게 호흡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제도, 엄격한 상하 관계, 효율, 따돌림, 그런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따스한 일시적 피난 장소입니다. 누구라도 그곳에 자유롭게 들어가고, 거기서 나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곳은 말하자면 ‘개인’과 ‘공동체’의 완만한 중간 지역에 속하는 장소입니다. 그곳의 어디쯤에 자리를 잡을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량에 맡겨집니다. 우선 나는 그곳을 ‘개인 회복 공간’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공간이라도 괜찮습니다. 딱히 대규모적인 것이 아니어도 됩니다. 수작업처럼 조촐한 장소에서 아무튼 다양한 가능성을 실제로 시험해보고, 만일 잘될 것 같으면 그것을 하나의 모델=발판으로 삼아 좀 더 발전시켜나가면 됩니다. 그런 공간을 점점 확대해나가면 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간은 좀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가장 올바르고 이치에 맞는 방식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장소가 여러 곳에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으면 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문부과학성 같은 상위 관청에서 하나의 제도로서 그런 것을 현장에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개인 회복’을 문제로 삼고 있는데, 그것을 국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해결하려고 들다가는 그야말로 본말전도라고 할까, 일종의 코미디가 될 수 있습니다.
225page
다양한 종류의 책을 샅샅이 읽으면서 시야가 어느 정도 내추럴하게 ‘상대화’된 것도 십대의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묘사된 온갖 다양한 감정을 거의 나 자신의 것으로서 체험하고, 상상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온갖 신기한 풍경을 바라보고 온갖 언어를 내 몸속에 통과시키는 것으로 내 시점은 얼마간 복합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즉 현재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뿐만 아니라 조금 떨어진 다른 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나 자신의 모습까지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가능해진 것입니다.
어떤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아무래도 세계가 부글부글 끓어서 바짝 졸아듭니다. 온몸이 긴장하고 발걸음이 무거워져 자유롭게 움직이기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시점에서 자신이 선 위치를 바라보게 되면, 바꿔 말해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뭔가 다른 체계에 맡길 수 있게 되면, 세계는 좀 더 입체성과 유연성을 갖기 시작합니다. 이건 인간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를 통해 그것을 배운 나에게는 큰 수확이었습니다.
만일 책이라는 게 없었다면, 만일 그토록 많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썰렁하고 뻑뻑한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즉 나에게는 독서라는 행위가 그대로 하나의 큰 학교였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 설립되고 운영되는 맞춤형 학교고, 나는 거기서 수많은 소중한 것들을 몸으로 배워나갔습니다. 까다로운 학칙도 없고 수치에 의한 평가도 없고 격렬한 순위경쟁도 없었습니다. 물론 따돌림 같은 것도 없습니다. 나는 커다란 ‘제도’안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책을 통해 그러한 나 자신만의 별도의 ‘제도’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머릿속에 그리는 ‘개인 회복공간’은 바로 그런 것에 가까운 곳입니다. 아니 꼭 독서만은 아닙니다. 현실의 학교 제도에 잘 섞이지 않는 아이라도, 교실에서의 공부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아이라도, 만일 그런 맞춤형 ‘개인 회복 공간’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것을 찾아내고 그 가능성을 자신의 공간에서 키워나갈 수만 있다면, 훌륭하게 그리고 자연스롭게 ‘제도의 벽’을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마음의 존재방식=‘개인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평가해주는 공동체의 혹은 가정의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제10회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261page
어느 고명한 문예비평가(이미 돌아가셨지만)는 ‘이 정도의 글을 문학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고 내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혹평했지만, 그걸 보고 ‘당연히 그런 의견도 있을 수 있지’라고 나는 순순히 생각했습니다. 그런 말씀에 딱히 반발심을 느끼지도 않았고 화가 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분과 나는 ‘문학’을 바라보는 방식이 애초에 달랐습니다. 그 소설이 사상적으로 이러저러하다, 사회적 역할이 어떠어떠하다, 전위냐 후위냐, 순수문학이냐 아니냐, 나는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로서는 ‘그냥 쓰면서 즐거우면 그걸로 좋지 뭐’라는 자세에서 시작한 것이라 애초에 얘기가 서로 맞물릴 리가 없습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는 데릭 하트필드라는 가공의 작가가 등장하는데, 그가 쓴 작품중에 『기분 좋다는 게 뭐가 나빠?』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게 당시 내 머릿속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던 사고방식입니다. 기분 좋다는 게 뭐가 나빠?
271page
독자를 염두에 둔다고 해도, 이를테면 기업에서 상품을 개발할 때처럼 시장조사를 하고 소비자층을 분석하고 타깃을 구체적으로 상정하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내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공의 독자’입니다. 그 사람은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없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있겠지만 그런 건 얼마든지 교환이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 교환 불가능한 것은 나와 그 사람이 이어져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어디서 어떤 상태로 이어져 있는지, 세세한 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참 저 아래쪽, 어두컴컴한 곳에서 나의 뿌리와 그 사람의 뿌리가 이어져 있다는 감촉입니다. 그것은 너무도 깊고 어두운 곳이라서 잠깐 내려가 상황을 살펴본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라는 시스템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이어졌다고 감지합니다. 양분이 오고 간다고 실감합니다.
그렇지만 나와 그 사람은 뒷골목을 걷다가 마주치더라도, 지하철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앞뒤로 줄을 서 있더라도, 서로의 뿌리가 이어진 것은(대부분의 경우)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서로 낯선 이들로서 그냥 스쳐 지나가고, 아무것도 모른채 각자 갈 길을 갈 뿐입니다. 아마 두 번 다시 마주칠 일도 없겠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땅속에서, 일상생활이라는 단단한 표층을 뚫고 들어간 곳에서, ‘소설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공통의 이야기를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합니다. 내가 상정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독자입니다. 나는 그런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즐겁게 읽어주기를, 뭔가 느껴주기를 희망하면서 매일매일 소설을 씁니다.
그에 비하면 일상적으로 주위에 존재하는 현실의 사람들은 꽤 성가십니다. 내가 책을 새로 낼 때마다 사람들은 마음에 든다, 마음에 안 든다, 라고들 말합니다. 분명하게 의견이나 독후감을 밝히지 않더라도 그런 건 얼굴을 보면 대개 알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인간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까.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리키 넬슨이 노래한 것처럼 ‘모두를 즐겁게 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그런 개별적인 반응을 직접 지켜본다는 것은 글을 쓴 사람으로서는 상당히 힘겨운 일입니다. 그런 때는 ‘역시 나 혼자 즐기는 수밖에 없지’라고 심플하게 모른 척 합니다. 그런 두 가지 자세를 나는 경우에 따라 나 좋을 대로 구별해가며 쓰고 있습니다. 이건 오랜 세월 작가로서 살아오는 가운데 몸에 익힌 기술입니다. 어쩌면 살아가기 위한 지혜 같은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