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당시의 꿈 2017.03.01.
열아홉 스물 무렵, 고등학교 졸업무렵이었다. 수능을 보았으나 시험운이 없었는지 당시의 복잡한 사정때문이었는지 성적은 억울할 정도로 평소의 실력보다 낮게 나왔었다. 코이카의 의사나 한의사가 내가 막연하게 동경했던 일이었다는 것은 몇 년 뒤에나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도 자신의 전문적인 기술을 갖추고 방랑하고 배회하는 일은 나에겐 큰 로망이었고 간절한 소망이었었다.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고 소통하고 교감하는 일. 한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새로운 장소로 여정을 꾸리는 사람으로서의 일.
하지만 아무리 간절했으면 무얼하나 의대의 문턱은 높기만 했는데. 하지만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일은 굳이 의사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알게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의사라는 형식이 아니라 다른 형식으로도 자신의 생각을 갖추고 그것을 소통하고 교류 교감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 때는 내가 너무 어리고 견문이 너무 좁아 의사라는 직업을 원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이제와서 들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이 의사라는 직업이 아니라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못 이룬 목표나 꿈에 대한 미련을 갖게 되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열아홉 스물 당시에는 맹목적일정도의 목표에 대한 좌절이 오자 마음은 한층 무거웠었다. 새로운 대안이나 기존 목표에 대한 대안적인 목표를 꿈 꾸거나 구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사실 대안적 목표라기보다는 의사가 되어 사람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싶다는 목표에 대한 연장선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당시 머릿속의 고민들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의사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정리하자 다른 고민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고도 볼 수 있었다.)
10년 정도가 지난 뒤에는 어떤 사람이 되야할까에 대한 고민과 방황을 하게 되었다. 자신만의 생각을 갖추고 그것을 표현하고 교감 소통할 보편적인 수단이나 기술을 갖추게 되기를 바랬다. 그 수단이나 도구 기술로서 문화적인 소양을 갖추길 원했다. 나자신이 그런 면에서 너무 부족하고 서투르기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갖는 여러 감성이나 욕구가 무엇인지 자각하지도 못하고 자각하지 못하기에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기에도 서툴렀다. 표현한다 하더라도 보편성이나 공감대를 일으킬만한 공통적 코드, 문화적인 코드에 대해 아는 바도 너무 없어서 외계인 말을 하는가? 하고 잘 이해받지 못하는 때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에 이런 꿈, 자신의 생각을 갖추고 표현하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 나 자신을 생각하던 당시에는 내가 간절히 원하는 바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10년이나 그 이상의 시간동안 열과 성을 다해 추구해도 될 만한 그런 꿈의 자격이 있는가 하고 번민하기도 불안하기도 했다.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거지? 하고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도 했다. 문화적인 소양이나 재능이 있는지도 잘 파악하지 못했고 칭찬한번 들어보지 못했는데...... 하고 말이다.
꿈틀거리지만 막연하고 안개와 같던 내 감성이나 생각이 사진이나 언어를 통해 정리하고 분석되고 표현되어지는 과정을 긴 시간 동안 거치고 나니, 이제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일상생활에서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지를 형태를 지닌 생각으로 이해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과 안도감이 든다. 문화적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표현하는 기초적인 소양을 갖추게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과거의 간절함을 이루어서 어쩌면 맥이 풀리는 느낌도 들고 처음 꿈꿨던 시절의 꿈틀대던 열정이라는 것이 많이 차분하고 침착한 존재로 된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지금은 일기나 편지 독후감이나 감상문 외에는 글이란 것을 잘 안쓰고 사진도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는 예전에 고민했던 소재나 방식의 연장선상에서 작업을 한다. 어찌보면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가 두렵기도 하지만 기존의 고민들을 심화시켜 나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위안하고 싶다. 더 이상 방황하기보다는 정체성이 정해지고 안정이 되어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사진은 퍼온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