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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이해라는 것도 노동인가요?

까르멘 2020. 5. 12. 16:33

 

외롭지 않을 권리-황두영

41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참고로 이 책은 매우 흥미진진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아직 완독을 못해 아래 구절에서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다)

 

<많은 남성은 공감과 위로가 노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공감과 위로가 여성으로서 당연히 갖는 천성이라거나 사랑하면 자연스레 분출되는 공기 같은 것이라는 낭만적 착각에 빠져있다.>

 

 

나는 남성이긴 하나 대인관계에 있어 공감과 위로를 수시로 해야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직장 뿐 아니라 가족들이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공감이나 위로를 베이스로 장착하고 다녀야 하는 때도 많다. 위의 예시에서는 여성이 공감과 위로라는 노동을 주로 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모든 이론에는 예외가 있는 법. 나는 남성이나 공감과 위로를 많이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닦뜨리는 때가 많다.

 

그럼 여기에서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할 수 있겠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사회복지사>이다. 그것도 도서관에서 장애인들에게 지식정보접근을 도와드리는 자원봉사자를 교육하고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회복지사이다. 대인관계에서 작은 것 하나 세심하게 신경쓰지 않으면 민원이 발생하거나 다툼이 벌어져 소란스러워지는 일을 수시로 맞닦뜨리는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우리 도서관은 공무원, 공무직, 그 외 용역 포함하면 600여명이 넘는 직원이 상주한다. 난 여기에서 무기계약직인 공무직에 속한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사서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우리과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민원이나 불평은 내 선에서 해결을 하지만, 나도 감당 못하는 민원이 발생하면 윗선에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습니다라고 보고하면 일선현장에서의 직원의 고충을 이해하고 민원인과 직원간의 갈등을 조율하거나 서비스의 방침을 정해서 기준을 잡아주신다.

 

이용을 하러 오는 장애인 이용자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공감해주기도 하지만 그런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이나 애로점 또한 이해하고 공감해주어야 한다. 사소한 것부터 커다란 것까지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무리한 서비스 제공을 하다보면 조금씩조금씩 가랑비에 옷 젖듯이 번아웃을 가져온다. 그래서 도서관에서는 케잌만들기나 꽂꽂이와 같은 서비스 보직 직원 대상으로 힐링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나는 집에서 따로 나와서 혼자사는 1인 가정이긴 하지만 전화통화로 부모님간의 갈등이나 외로움이나 서운함이나 답답함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수시로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기도 한다. 다른데 밖에 발설하면 프라이버시상 문제가 되기에 크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도 듣고 기억만 할 뿐 다른 데 가서 썰을 푼다거나 할 수도 없다.

 

직장에서나 집안 식구들이나 업무 외의 대인관계 속에서 공감과 위로를 생활화하다가 겪게 되는 번아웃은 어찌 해결해 왔는가?하면, 나 같은 경우에는 사진 촬영을 하러 여행을 간다거나 일기를 쓴다거나 문화생활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은 혼자 해도 가능한 것들이고 이런 취미를 하여 결과물을 정말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나누고 교류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이해하기만 하는 노동을 하던 나는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받고 이해받는 듯한 힐링을 얻게 되는 것같다.

 

때문에 이런 나의 결과물을 공유할 때에는 대화가 될만한 사람을 물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아주 수준급의 레벨은 못 되지만, 문화생활의 기초부터 설명해서 결과물을 공유시켜 입에 떠먹여드려야 하는 일을 하게 되면 나에게 힐링이 되는게 아니라 피곤한 일을 하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라인 상에 SNS상에 작업물을 올리고 짧은 피드백을 받을 때, 이해받는다는 기분이 들면 문화생활을 하는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 매번 공감하고 이해하는 입장에서 반대의 입장이 되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일 뿐 아니라 매우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공감과 이해에 에너지를 쓰고 노동을 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감과 이해라는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받고도 싶고 애로사항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다. 그냥 슥~슥 하면 되는게 공감과 이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것이 노동이라는 인식도 없는 사람 또한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구절절 말해야 뭘 하나 그냥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