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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영의 <외롭지 않을 권리>를 읽고 인상깊은 부분을 발췌 정리하며

까르멘 2020. 5. 26. 19:32

독후감 대신 눈에 띄는 구절들을 발췌하는 것이

원작의 느낌을 잘 전달할 것만같고

본문전체를 읽어보고싶은 생각도 하게 되어

책도 직접 찾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 작업을 해봅니다.

블로그 <숨어있기 좋은 방>에서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이 "독후감 대신 인상깊은 구절 발췌정리하기" 작업이

한동안 지속되다 보면

이 블로그에 멋진 서재가 하나 마련되어지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에는 진선미의원의 보좌관이었던 황주영님의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이야기

<외롭지 않을 권리>

를 읽고 인상깊거나 공감되는 부분들을 발췌하였습니다.

 

책의 2부 서로 돌보며 함께 살지만

와 3부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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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을 권리>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황두영 지음-

 

2부 서로 돌보며 함께 살지만

 

*섹스하는 사이만 같이 살 수 있나요?

99페이지~100페이지

 

누군가와 같이 살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이 강력한 주의 환기 요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골몰하거나 불안에 잠식당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과일 깎아 먹으며 나누는 몇 마디로도 나도 모르게 울적한 기분을 털어버려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집 안 어딘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얻는 마음의 평화도 있다. 아니 꼭 집안에 있을 필요도 없다. 누군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김하나·황선우『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혼자도 결혼도 아닌,조립식 가족의 탄생』,위즈덤하우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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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동거’는 이성애나 동성애 같은 성애적 관계의 커플이 함께 사는 것을 이야기하는 반면, 이 책은 깊은 우정에 기반한 관계를 그린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저자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더불어 경제적으로도 협력한다. 성인이 돈을 섞는다는 건 신뢰를 보여주는 일이다. 둘의 사이좋은 모습을 보면 사람이 같이 살고, 국가가 이를 인정하기 위해 꼭 성적인 연결이 필요한지 묻게 된다. 

 

*늙어 남자 밥해주지 말고, 우리끼리 재밌게 살자

108페이지

 

내가 설명하는 방식은 보통 이렇다. ‘주변에 사별하거나 이혼하셔서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지 않느냐, 재혼이 말이 쉽지 그게 어디 보통 일이냐, 혼자 외롭게 쓸쓸히 사느니 이성이든 동성이든 마음 맞는 친구랑 살면 얼마나 좋냐, 같이 살면 나라에서도 신경 덜 쓸 수 있어서 좋다, 외롭게 살지 말고 친구랑 같이 살라고 인정해주고 지원해주는 법이 생활동반자법이다’ 그러면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은 법 같다고 해주신다. 이런 경험이 없다면 이 책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같이 살고 싶은 이유를 국가가 꼭 알아야 해?

120페이지

 

혼자는 힘들다.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은 이유는 다양하다. 정서적 충만, 경제적 안정, 장애인의 활동보조 등 이성애적 사랑에 비해 작은 이유라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 싶은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너무 익숙할 뿐, 사실 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 싶은지를 국가가 굳이 따져 묻는 것이 더 어색한 일일 수도 있다. 서로에 대해 신뢰하고 서로가 책임을 다할 수 있는지만 묻자. 그것이 생활동반자법의 정신이다.

 

*생활동반자법은 피해자를 위한 법

139페이지

 

이미 같이 살고 있거나, 혹은 같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더 약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결혼할 준비를 하지 못한 청년들, 사회복지사각지대에 놓이는 가난한사람들, 자신의 재산권을 지킬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를 방치하는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은 이들을 위한 법이다.

 

*생활동반자법은 동성애자를 위한 법이다?

141페이지

 

생활동반자법을 추진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힌 반대 논리는 생활동반자법이 동성혼을 위한 전초 단계라는 것이다. 사실 성 정체성 문제는 생활동반자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생활동반자법은 성 정체성, 성별, 성관계 여부 등을 전혀 묻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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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동반자법은 원하는 사람과 서로를 돌보며 살 기회를 국민 모두에게 더 넓게 보장하려는 법이다. 생활동반자법은 둘이 왜 같이 살고 싶은지를 굳이 묻지 않는다. 둘이 성관계를 하는 사이인지, 마음으로 깊게 의지하는 사이인지는 국가가 알 필요가 없다. 생활동반자법을 운영하는 정부가 알아야 할 것은 둘의 관계가 안정적이고 평등하게 유지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것 뿐이다.

 

*생활동반자법은 동성애자도 위한 법

144페이지

 

생활동반자법은 국민들끼리 같이 살겠다고 할 때 정부가 보호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해주는 제도다. 또 생활동반자를 맺는 둘 사이의 권리 문제만 조정할 뿐, 신분관계를 변동시키지 않기 때문에 상속, 친권 등의 문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물론 생활동반자법이 더욱 발전하여 외국인과의 생활동반자 관계도 가능하게 되고, 더 많은 권리를 보장할 수도 있지만 생활동반자법이 시작하는 단계에서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생활동반자법의 모티브가 된 프랑스 팍스

145페이지

 

결국 동성혼 논쟁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궁극적으로 해소해야지, 생활동반자법과 같이 구체적인 권리의 나열들로 해결할 수 없다.

실제 생활동반자법이 초안이 공개된 후 성소수자 단체들은 생각보다 알맹이가 없다며 아쉽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상속 및 입양, 친권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의료결정권, 공공주택 입주권 등에서도 아주 명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동성혼이 허용되면 동성 부부가 가질 수 있는 권리가 무엇인지 분명하다. 그동안 결혼한 이성 부부에게 주어진 혜택이 그대로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생활동반자는 새로운 법적 관계이기 때문에 그 혜택을 하나하나 합의해 가야 할 뿐 아니라 혼인에 비해서는 보장하는 권리가 적을 수밖에 없다.

 

*행복해지고 싶은 보편적 마음

149페이지

 

동성 커플이 같이 사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생활동반자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는 또 기회를 잃는 것이다. 국민으로서 더 많은 권리를 보장받을 기회 말이다. 생활동반자법은 정체성과 무관하게 국민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는 법이다. 당신이 누구와 성관계를 갖든 갖지 않든, 결혼 적령기이든 아니든, 이혼한 경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또 다른 방법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생활동반자법은 특정한 성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은 우리 모두의 보편적 마음에 대한 법이다.

 

3부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개인’이 모여 ‘함께’사는 즐거움

*낯설게 보이는 ‘가족’

154페이지

 

모든 가족은 제각기 다른 비합리성의 총체다. 모든 가족을 조금만 깊게 살펴보면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각기 다르게 엉망진창이다.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감정과 돈이 분배되고, 이해할 수 없는 기대를 주고받는 이상한 흐름도가 있다. 그냥 덮어버린 흉터가 있고, 곪아가고 있는 줄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방치하고 있는 환부가 있다. 그 비합리성에 익숙해져서 이상한 걸 모르거나, 내 가족이라 그냥 어쩔 수 없이 참는 것이다. 모든 가족은 그런 의미로 황금비를 갖춘 그리스 조각상보다 제각각으로 못난 괴물에 가깝다.

......

156페이지

 

같이 사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수준도 다양해진다. 온기와 즐거움을 나누는 수준에서부터, 물리적인 돌봄을 주고 받는 수준, 상속 및 친권 등 신분관계의 변동을 기대하는 수준까지 말이다.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단순히 당장의 생활비 부담을 나누는 수준에서부터, 먼 미래를 위한 재테크를 함께 기획하면서 임금노동과 가사 및 육아노동을 분담하는수준까지 다양하다. 기간의 측면에서도 현재의 삶만 함께하길 바랄 수도 있고, 죽어서 제사까지 챙겨주길 바랄 수도 있다. 성적인 친밀성 차원에서도 성애적이지 않은 관계에서부터 평생에 걸쳐 두 사람끼리만 섹스하기를 기대하는 관계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것은 서로를 아끼며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평등한 개인끼리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164페이지

 

생활동반자법이 생기면 ‘결혼’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부부관계도 전통적 성 역할에 따르는 역할극이 아닌 평등한 개인끼리 주체적인 약속이라는 점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이상적인 부부관계는 남녀가 평등한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시대의 결혼은 현대적 이상과 전통적 관습 사이에 끼어있다. 결혼과 경쟁할 만한 다른 제도가 있을 때 ‘결혼’의 가치에 대해 본격적인 질문이 가능하다. 그래야 더욱 경쟁력 있는 제도가 되기 위해 결혼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를 두고 결혼제도의 적폐청산이 진행될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이 있는데도 결혼을 한다면 그 사랑은 정말 강고한 것이고, 그 결혼은 더욱 튼튼할 것이다. 더 이상 나이가 차서, 혼자 살 수는 없으니, 남들이 다 하니까, 안 할 이유가 딱히 없어서 하는 것이 되진 않을 것이다. 즉 결혼은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행복의 방식이 된다. 생활동반자법은 결혼을 향한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동거에 대한 장벽을 낮추고 함께 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늘리면 결혼을 통해 좀 더 긴 미래를 바라볼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결국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혹은 생활동반자 관계를 등록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찾아야 한다. 낡은 성 역할에 기대지 않고 평등한 개인끼리 함께 사는 방법, 윤리, 제도를 말이다. 생활동반자법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행복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모두를 평등하고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라고 가정한다. 생활동반자법은 결혼제도가 허락하는 낡은 성 역할을 벗어나도 함께 할 방법을 찾을 수 있고, 실패할 때에도 또 행복을 찾아 새로운 여정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생활동반자법은 ‘함께 사는 즐거움’을 찾아가는 싸움

170페이지

 

동거 가구 차별해소 논의의 초점이 저출산에 맞춰지면 출산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가구는 다시 차별의 대상이 된다. 성적인 친밀함이 없지만 서로 돌보기 위해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상호 돌봄이 필요한 노인, 장애인 등은 이런 경우가 많다. 성적인 친밀함이 있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 없거나 낳을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출산율을 높일 목적으로 동거 가구 차별해소를 논의한다면 출산을 했거나 시도하는 기구에만 지원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저출산 해결이 아닌 ‘함께 사는 즐거움’이 우리의 목적이어야 한다.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헌법적 권리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금지를 위하여

180페이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데 특정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고, 따라서 무엇이 차별인지도 이야기하기 어렵다.

가령 회사에서 동성 부부에게만 가족수당을 주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 둘이 동성 부부인지, 그냥 친구 사이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신청이 들어왔다고 가족수당을 주기는 어렵다. 둘 사이가 사실혼인지 아닌지 판단할 근거도 권리도 마땅치 않다. 특정한 권리가 부여되기 위해서는 그 권리를 정당하게 가질 만한 사람들이 구분되어야 한다. 생활동반자법이 없고, 누가 생활동반자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생활동반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주장은 공허하다. 차별금지를 위한 가장 우선적인 조치는 법적인 테두리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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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족 중심 사회복지제도하에서 생활동반자법이 더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한국은 법적으로 인정되는 가족 밖에서 살기 어려운 사회다. 한국은 법적으로 인정되는 가족 밖에서 살기 어려운 사회다. 한국의 사회복지제도는 누구나 특정한 가족 안에서 살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런 사회에서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족들은 더 큰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회복지의 단계마다 예외적인 존재가 되고, 쉽게 사각지대에 빠진다. 지나치게 가족 중심적인 사회복지체계를 개인 중심의 보편적 복지체계로 바꾸는 동시에 사회복지가 포용하는 가족의 범위를 확대해나가야 한다.

 

*다양한 가족들의 정규직화

184페이지

 

생활동반자법은 다양한 가족들의 정규직화다. 박승희 교수의 비유대로 가족의 다양화가 취약한 여러 가족 형태를 전전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혼인 밖의 가족들이 불안정한 가족 형태를 반복하며 떠돌지 않도록, 그들도 권리를 가지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정규적인 틀을 주는 것이다. 점점 줄어드는 정규직 일자리처럼 우리 사회에서 혼인의 틀은 점차 좁아져 간다. 한번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노동자들이 계속 불안정한 일자리를 떠도는 것처럼, 소위 적령기에 결혼하지 못했거나 이혼, 사별 등으로 결혼 밖으로 튕겨 나온 국민들은 좀처럼 다시 ‘정상 가족’의 틀에 들어가지 못한 채 외롭고 불안정한 가족생활을 보낸다.

 

*‘사실혼’ 개념을 통해 권리를 확대할 수 있을까

190페이지

 

가족제도는 법적 제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각자의 감정들까지 얽혀 있는 문제이다. 가족제도를 바꾸기 위해선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면서 가족제도의 비합리적인 뭉치들을 덜어내야 한다. 누구보다도 입법 과정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입법 외의 방식으로 동거 가구의 권리를 보장할 방법을 깊게 고민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활동반자법의 입법 외에는 적절한 방법이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적 개념이다. ‘책임 있는 동거 관계’가 무엇이고 어떻게 부를지, 그 관계는 어떤 조건으로 만들어지고 해소되는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생활동반자법은 바로 책임 있는 동거 관계라는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생활동반자’라는 법적 개념을 만들고 나면 새로운 상상력이 깃든다. 기초생활보장도, 국민연금도, 국민건강보험도 고대에서 내려온 개념이 아니다.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만든 법률상의 발명품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온 역사의 연속이다. 그리고 행복을 찾기 위해 싸워온 우리들의 시간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법률적 개념을 만들고, 그 개념의 내용을 채워나가면 된다.

 

*법적 개념을 만들면 상상력이 깃든다

191페이지

 

정치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 헌법의 목적을 구현해가는 과정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인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를 더 많은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우리는 만들어갈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으면서 말이다.

 

*함께 살며 돌보자는 특별한 계약관계

*친족 신분관계가 바뀌지 않는 생활동반자법

197페이지

 

생활동반자의 권리와 의무는 많은 부분 민법을 참조해야겠지만, 민법의 가족법과는 완전히 별도로 규정되는 관계다. 생활동반자는 친족과는 다른 별도의 법적 관계를 새로 정의한다. 생활동반자를 맺어도 나는 나일 뿐, 누구의 아내도 남편도 며느리도 사위도 아니다.

친족 신분관계가 변동되지 않는다는 건 생활동반자 관계의 한계이기도 하다.

 

*일방적으로 꺨 수 있지만 책임은 져야

200페이지

 

둘 중 한명만 원해도 깰 수 있다는 점도 혼인과 다른 생활동반자 관계의 주요한 특징이다.

 

*혼인의 윤리, 생활동반자의 윤리

203페이지

 

생활동반자법은 누군가와 같이 사는 문제를 좀 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가져온다. 혼인이 배우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와 맺는 계약이라면, 생활동반자는 둘의 동거에만 초점을 맞춘 계약이다. 그렇기에 생활동반자 관계의 해소는 이혼과 다르다. 생활동반자 해소는 어디까지나 사생활의 문제이며, 나의 사회적 신분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돈도 감정도 둘 사이에 잘 정리하면 된다. 또 민법상 가족관계등록부가 아닌 별도의 기록으로 남는다.

 

*청약가점을 위해 생활동반자법을 남용할 수 있을까

206페이지

 

생활동반자 관계를 허위로 맺어 남용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가 충분한 사회복지혜택을 제공할 수 있느냐를 걱정해야 한다. 부부에게 주던 사회복지, 회사복지의 혜택 중 일부를 생활동반자 관계에까지 제공한다면 막상 반발이 클 수 있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거나 각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해, 청약가점이 평균적으로 올라가고 임대주택 경쟁률이 치열해진다. 혹은 회사에서 가족수당을 동결하거나 줄이겠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흔쾌한 마음으로 생활동반자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당장 신혼부부 분양이 더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면, 하늘이 내리고 전통이 보장하는 특별한 관계인 혼인을 ‘함량미달과 동급으로 취급한다’는 간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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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동반자법은 ‘혼인하지 않은’,‘두 명’의 ‘성인’의 관계에 한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혼인 제도, 가족제도의 근간을 건드리지는 않고 기존의 가족제도를 보완하는 법이라고 볼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의 많은 부분을 모방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관계에 걸맞도록 변형시킨다. 프랑스 팍스(PACS), 스웨덴 삼보(SAMBO) 등 외국의 동거법도 참조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혈연이 아닌 성인 셋 이상이 가족을 이룰 수 있는 가족제도는 발명되지 않았다. 이는 둘 사이의 생활동반자법을 구상하는 것보다 훨씬 근원적이고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을 넘어 더 다양한 경우를 만들고자 한다면 앞으로도 함께 고민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