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의 <보통의 언어들>을 읽고 인상깊은 부분을 정리 발췌하며
독후감 대신 눈에 띄는 구절들을 발췌하는 것이
원작의 느낌을 잘 전달할 것만같고
본문전체를 읽어보고싶은 생각도 하게 되어
책도 직접 찾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 작업을 해봅니다.
블로그 <숨어있기 좋은 방>에서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이 "독후감 대신 인상깊은 구절 발췌정리하기" 작업이
한동안 지속되다 보면
이 블로그에 멋진 서재가 하나 마련되어지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에는 저작권 수입에 있어 상위랭킹에 있다는 속물적인 소개가 훨씬 이해가 쉬울
작사가 김이나님의
<보통의 언어들>
를 읽고 인상깊거나 공감되는 부분들을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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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보통의 언어들_김이나
*속이 보인다
-경험치에 기반한 어른만의 언어
58페이지
사람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쉴 새 없이 자기의 단점을 고백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급적이면 좋은 걸 더 많이 보는 사람은, 아마도 안에 좋은 게 더 많은 사람일 테다. 인간에게 ‘객관적’ 시각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나의 좋은 면에 투영시켜 좀 더 나은 세상을 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드세다. 나대다
-사람을 주저앉히는 말에 대해
169페이지
나는 세상은 방구석에서 뭐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 모든 걸 바치는 덕후들과 무리에서 늘 튀어가며 소리쳐준 나대는 이들로 인해 변해왔다고 믿는 사람이다. 온몸에 돌을 맞는 나대는 이가 기존의 틀을 깨어주면, 이전의 세계에서는 이득이 될 게 없었던 무언가에 몰두해온 덕후들이 파놓은 세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 사이 어디 즈음을 부유해왔다면, 적어도 이 양 극단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진 셈이다. 그러니 나댄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 할 때마다 틀어막는 걸로 그 빚을 탕감, 아니 더 늘리지는 않도록 해보자.
*겁이 많다
-결과적으로 늘 강한 사람들
179페이지
겁이 많다는 건 단순히 벌레나 귀신을 무서워하는 그런 것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겁이 많은 자들은 지켜야 하는 것들의 가치를 아는 자들이다. 또 자신과 얽힌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일에 대한 신중함이 있는 자들이다. 수비에 총력을 다하는 축구팀의 경기가 지루할지언정, 그들은 결국 강하다. 삶에 있어 충동보다는 지구력으로 대처하는 이들, 그중에서도 ‘나는 겁이 많은 편이야’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은 더욱 호감이다. ‘겁이 없음’을 매력적인 무기로 휘두르지 않는 그들은, 결과적으로 늘 강했다.
*이상하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길
183페이지
사람은 본인 고유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고, 특별히 나만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하곤 한다. 그러고는 정작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본능적으로 배척한다. 이것은 낯선 생명체를 거부하는 동물적인 본능에서 기인한 습성이겠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 본능을 이성으로 거를 수 있어야 함에도, 자주 그러기를 실패한다. 그리고 반짝이는 그 특별한 사람을 성의 없는 한 마디로 정의해버린다. ‘이상하다!’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잃어봐야 우리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질 수 있을까. 앞으로 살면서 우리는 아마도, 수없이 많은 ‘이상하다’는 말을 툭 하고 내뱉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그 말을 ‘특별하다’고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좀 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음미하며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살아남다
-영원히 근사한 채로 버텨낼 순 없다
190페이지
마지막으로는 자존심을 부리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무례한 클라이언트에게 일침을 날리지 못하고 웃어버린 순간, 음악 관련 일을 전혀 하지 않았던 돈 많은 제작자가 가사를 가지고(빨간 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감 놔라, 배 놔라 할 때 그요구를 들어주는 시늉을 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든 일이 그러하듯 좋은 클라이언트랑만 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돌이켜보면 그건 행운에 가깝다.) 작품 하나가 아쉬운 커리어일 땐 더더욱.
15년 전쯤 업계의 중심에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다른 파트의 일들을 이해하기에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고 기분 좋게 떠올릴 수 있는 이름들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또 자존심은 너덜너덜해졌을지언정 자존감은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아우라를 갖고들 있다. 감이라는 건 비단 창작업에서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유난히 수행능력이 빛나는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감이 좋은 때다. 감은 영원하지도 않지만 한 번 왔다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다시 한 번 돌아왔을 때 그것을 펼칠 기회가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 그리고 그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내 지난날들엔 비굴하고 비참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모르긴 몰라도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시선도 많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빛나는 재능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게 ‘살아남기’라는 것이다. 금 밖으로 나가면 게임이 끝나면 동그라미 안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휘청거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올 것이다. 그때 볼품없이 두 팔을 휘저어가며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 그 멋없는 순간 스스로 겸연쩍어 선 밖으로 나가떨어진다면 잠깐은 폼날지언정 더 이상 플레이어가 될 순 없다.
기억하자. 오래 살아남는 시간 속에 잠깐씩 비참하고 볼품 없는 순간들은 추한 것이 아니란 걸. 아무도 영원히 근사한 채로 버텨낼 수는 없단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