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훈의 「숨어 있어도 좋은 방」 서평-천지영
최철훈의 「숨어 있어도 좋은 방」 서평-천지영
내 친구 철훈이..... 최철훈, 철훈아.
의기소침해 보인다고 할까, 상념에 젖어 있다고 할까? 대학생 신입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네 첫 인상은 20대의 활기참과는 거리가 먼 음..물에 삶아진 시금치 같이 풀죽은; 모습이었어. 그래서였을까? 조심스럽지만 첫날 네게 먼저 말을 걸 수 있었어. 짧은 대답속에 네가 강릉에서 왔고, 재수생이라는 것을 알알지..
어느 날 공강시간에 학자금 대출을 신청하러 은행에 가야 했을 때 난 네게 같이 가줄 수 있냐고 물었지. 그 전까지 말도 몇마디 안해 본 네게 어떻게 그런 부탁을 했는지 모르겠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넘쳐나는 시간을 어디에다 무엇을 하며 써야 되는지 몰랐지만 시간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온 몸으로 느꼈던 것 같아. 안전하고 따뜻한 친구가 말이야.
은행에서 대출금 상담을 받고 같이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기억나니? 그 은행 직원은 우리가 사범대에 다닌다고 했더니 자기 꿈이 선생님이었다면서 너무나 예쁘게 웃으면서 얘기했지) 나는 마음이 많이 편안했고 네게 정말 고마웠어. 그 날이었나? 우리가 같이 현진건 생가를 방문한게? 우리 학교 근처에 유명한 작가의 생가가 있다는 게 놀랍기만 했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어디 찾아가거나 놀러다닌 적이 거의 없던 나는 그날 너랑 같이 그 집을 찾아갔던 기억이 잊히지가 않아. 아주 오래된 낡은 생가의 모습도, 툇마루 아래 돌계단에 앉은 날 찍어준 사진도 생생하다. 흑백사진이었나. 내 모습이 30~40년대 아낙네 같다고 막 웃었잖아. 하필 그날 내 머리가 쪽진 머리같았거든; (거의 20년이 흘러 얼마 전 가나아트센터를 방문하면서 느낀 건데 우리 학교 근처에 정말 가볼만 한 곳이 많았는데 대학시절 나는 무엇을 했나 아쉽더라)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폐인처럼 보냈다는 20대의 어느 시절, 나도 처음 직장을 다니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 주말이면 이불에 누워서 꼼짝을 하지 않았지. 그때 아마 무기력증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모르겠고 마음은 외로웠어. 그럴 때면 네게 전화를 했던 것 같아. 소소한 일상얘기를 하고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으면 뭔가 힘이 났어. 이 세상에 아무 조건없이 나를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게 살아갈 힘을 줬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나에게 너가 따뜻한 햇살, 듬직한 나무가 되어주었다는걸 아니? 우리 둘은 비슷한 마음, 모습이었기 때문에 서로 친구가 된거야. 물론 내가 먼저 너를 알아보았기 때문에 가능했지^^ 상처받기 쉬운 표정과 몸짓이 예민해 보이면서도 배신은 절대 없을 것 같았거든.
우리 쉽지 않았던 젊은 날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역시 힘든걸까? ㅋㅋ 넌 아닌 거 같아. 불룩한 뱃살처럼 표정도 넉넉하고 부드러워졌거든. 일상에 찌들지 않고 밝아 보여.
20대 너의 일상과 사람들에 대한 기록들을 보고 있자니 어떤 순간에는 눈물이 난다. 그래도 묵묵히 잘 걸어왔다고 말해주고 싶어. 앞으로 너의 40대, 50대 이야기도 들려 줄거지?
초년의 악운은 이제 바이바이하고 본격적인 인생황금기를 맞이해 보자구!! 우리 서로 ‘절망을 계획하지 않고 희망을 꿈꾸면서 얘기하는 동반자 같은 친구가 되자’ 앞으로도 믿고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