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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 대한 단상. <7년전의 7년전>.08.05.13

by 까르멘 2009. 12. 13.

 

 

7년전(?) 8년전(?) 아마 그 때쯤만 해도 노래를 들으려면 테잎으로 들어야했다. 반복해서 듣다가 테이프가

늘어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아쉬운 사람은 씨디로 듣거나 해야 했다.

 <7년전(?)의 7년전> 쯤에는 전축이 있는 사람은 레코드판을 사서 음악을 듣곤 했다. 요즘같이 MP3플레이어로

선곡도 맘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일은 꿈에도 꿀 수가 없었다.

 대신 이런 방법은 있었다. 공테잎을 사서 테이프나 CD 레코드의 음악을 듣고 싶은 순서대로 녹음시켜서 차근

차근 듣는 방법이 있기도 했고, 음질은 나쁘지만 라디오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 나올 때를 바싹 긴장하고

기다렸다가 라디오 디제이가 다음 곡은 “신성우의 ‘서시’입니다.”라고 멘트가 나오면 이 때닷! 하고 <빨강 동

그라미 버튼>을 눌러 녹음을 하는 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녹음법은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나름 스릴있고 낭만적인 음악 듣는 법이었는지

도 모르겠다.

 지금에야 인터넷으로 라디오 홈페이지에 가서 사연을 올리고 음악을 신청하고 당일에 신청곡과 사연이 소개되

지만, 그 때엔 인터넷이 없던 시기였기에 엽서에 예쁘게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예쁘게 써서 집배원아저씨가 우

체국 사서함에 배달할 때까지 며칠 걸려서 사연과 노래가 소개되었었다.

가끔씩 라디오 디제이에게 투정을 부리는 사연도 소개되곤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노래가 시작되었는데 그제서야 이곡은 누구누구의 어떤 곡입니다. 라고 소개하지 말라구욧!’ 하는 사연(?)

‘집에서 라디오로 소개되는 노래를 테잎에다가 녹음하는데 디제이 목소리가 같이 녹음되서 짜증나요.’
라는 그런 사연(?)말이다. 사실 사연(!)인지 민원(!)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7년전쯤(?)의 7년전이라면 14년전이 되나?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은 배철수나 전영혁을 떠올릴 테지만, 난

MBC FM의 박소현이 좋았다. 가요TOP10에서는 지나치기만하는 신인가수의 어설프고 촌스럽기만한(그 당시

음악 듣는 귀가 아직 안 뚫린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촌스럽다는 평 정도는 할 수 있었다.)노래도 들을 수 있

었고 유행가도 많이 틀어줬기에 나름 좋았던 모습으로 기억이 남아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말로 무시기무시기 지껄이는 음악만 나오는 배철수나 전영혁은 별로 흥미가 없었던 것

같다. ‘라디오라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배철수(!) 전영혁(!) 늙구수레한 아저씨보단 목소리도 예쁘고 얼굴도

주먹만한 당시엔 인기연예인이었던 박소현이 훨씬 낫지 않은가?’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 난 목소리나 외모로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다(?ㅡ,.ㅡ). 사실 난 박소현의 인간적인

면모가 좋아서 박소현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애청했었다(?).


언제나처럼 라디오를 듣던 어느날이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끝나고 박소현의 오프닝 멘트가 나와야 하는데

오프닝 음악이 나오면서, 담배에 쩔은 구수한(?) 목소리가 나오는게 아닌가? 아니!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배철

수였다.  오프닝멘트가 끝나고 배철수가 말하길

“박소현씨가 여의도로 오는데 차가 막혀서 조금 늦고 있답니다.”
라고 사정을 말해주었다.

 잠시후 박소현이 방송국에 도착하고 배철수아저씨는 진행을 박소현에게 넘겨 주었다.

‘라디오 디제이가 지각이나 해서 방송사고나 내고 자세가 안되어 있어! 자세가!’
라고 할 수도 있다.

김혜영처럼 결혼식날까지 드레스를 입고 방송을 진행했다는 사람처럼 직업정신에 투철한 것도 좋지만,
‘방송하다가 방송사고 낼 수도 있지 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디제이가 실수도 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였다. 꼼꼼해

서 완벽한 사람보단, 조금씩은 부족한 모습이 있는 그런 모습이 보다 인간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라는 생각을 했다.


 헌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난 소현이가 싫어졌다. 흘러다니는 유행가도 사랑타령도 다들 왜 거기서 거기인지 답답

함이 밀려올라왔다. 반복되는 레퍼토리의 유행가는 나름 섬세했던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잘 몰라주었다. 티비나

라디오등의 매체에 나오는 시시잡다한 레퍼토리의 잡담과 시시잡다한 노랫가락은 나를 질리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호기심이 많은 대신 새로움이 신선함이 사라지면 금방 지쳐버리는 내 체질은 온갖 매체와 헤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난 갈팡질팡하던 사춘기의 도피처로 공부를 택했다.

성격도 모나게 되었고 자연히 친구와도 다들 헤어졌다. 공부라는 도피처로 한없이 파고들어 외로움을 달랬다.

소현이가 더 이상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따분한 유행가만 틀어주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소현이와도

헤어졌다. 소현이에게 차인 것(?말이 좀 애매하지만...뭐..ㅡ.ㅡ)이 아니라 내가 소현이를 찬 것(?)이긴 했지만, 난

실연의 아픔을 가지게 되었다. 익숙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란 그런 부작용을 낳게 하나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깊은 잠을 자고 나자 7년이란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어쩌면 8년이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소현이는 더 이상 디제이를 하지 않지만 소현이를 대신하는 음악방송은 많아졌다.

 

 

08.05.13에 쓴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