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런 일을 왜 해? 뭐하러 그런 말을 해?
그것이 사람사이의 어울림을 위한 것이든, 업무상의 기획이든, 정신적 유희이든,
나만의 언어를 갖기 위한 예술적 목적이든,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불만으로 자신을 망가뜨림이든.
<왜! 하느냐!>는 말을 가끔 듣는다.
억양이나 어투는 ‘쓸데없이 왜 해!!’, ‘하지마!!’ 이런 경우도 있고,
근 몇 년간에서 교감과 소통을 통해 나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는 사람의 경우에는
‘알 수가 없다. 이유를 알고 싶다.’
는 순수하게 나의 목적과 의도가 알고 싶은 경우도 있다.
상대를 이해시키고, 납득시키고, 잡음을 잠재우는 것,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것은
직관적 사고가 다분한 나에게 있어서......
예를 들면 ‘2인분의 흰 쌀밥을 만들기 위해 바가지에 쌀을 눈금 있는 컵으로 재서
2인분에 맞게 넣고 흐르는 물에 쌀을 씻고 물을 손등 어디쯤까지 넣은 후
전기압력밥솥에 넣은 후 취사버튼을 누르고 20분정도 기다리면 2인분의 흰쌀밥이 나온다.’
는 설명을 하지 않고,
‘2인분의 쌀밥을 만들려면 바가지에 쌀을 넣고 적당히 씻고 물 좀 넣어서 밥솥에 앉히면 돼.’
라고 쌀밥을 처음 짓는 사람에게, 당연히 세부내용은 안다는 가정 하에 얘기하는 것과 같다.
A->B->C->D라고 설명하지 않고 B와C는 생략하고
직관적으로 A=D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간 프로세스를 생략하고.
그런 중간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단순히 ‘이런거 왜해?...(하지마!)’ 란 억양과 뉘앙스의 말보다는
순수하게 궁금하고 세부 프로세스를 모르니 일처리 할 때 불안하다는
그래서 프로세스를 이해시켜 달라는 사람이 주변에, 예전보다는(!) 많이 생겼다.
직관적 사고가 다분한 나에게 그런 해명을 해야하는 일들이 생기고 새로운 일
(크고 거창하고 그런 일들은 아닙니다만. 업무상이든, 일상생활에 있어서든)을
도모할 때 그것이 때론 꼭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는 요즘이다.
최근에 들었던 <왜 해??>의 질문은
<스마트폰으로 여자친구가 밥먹는 모습을 왜 찍느냐?>
는 어찌보면 사소하고 일상적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을 모아서 사진집을 책으로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나중에 기념일에 선물해 주려고 혹은 이런 사람과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고 있다고 보여줌으로써 주변 여성이나 남성에게
나의 이런 근황을 내가 알리고 싶기도 해서 그렇고,
둘째로 사진!을 왜 찍는냐?는 질문은 예술가의 창작 동기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데 얘기가
너무 장황해 질 것만 같아 머릿속으로만 생각을 하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이라는 말로 제 대답이 묻혀져 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2.극단으로 치닻기만 하던 나는 잠시 어딘가에 닻을 내려보고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내 몸과 마음과 이성에 있어(나에게 적합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극좌와 극우와
파씨즘과 아나키즘(세계관에 있어서 머릿속으로만),
수도승의 절제와 타락과 방탕을
실현하려 세상과 부딫히고 맞섰나보다.
지금의 나 자신을,
나를 호기심이든 사랑이든 이해해주려 애쓰는,
지켜봐 준 주변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보며 조금이나마 작더라도 보람을 느꼈을까?
3.잘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타협점을 찾아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머릿속에서 고민하던 말이기는 하지만
누군가 나 아닌 사람이 얘기해주길 바라던 말 중의 하나였다.
내가 잘 한다고 생각(!! 주관적 자체평가가 되므로......)하는 일이 아니라
어느정도 공인된, 최소한 자질이 있다고 인정받는 일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이 그러한 일(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을 잘 하므로
본인 스스로도 이미 파악하고 있으리라 생각해서일까?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나 스스로가 안타깝게 생각이 된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나 관심분야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모험은
되도록 그만하자. 자제하자라는
마음을 먹게 되어서일까?
내가 잘 하는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흰트나 단서라도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