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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말하다> 를 읽고.정리 발췌하면서...

by 까르멘 2015. 3. 24.



봄이 되는 지 반가운 작가들의 신간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그간 일에치여 블로그에 업데이트를 못해왔는데 

오늘은 마침 휴무이기도 하고해서 동네까페에서 

김영하의 신간 <말하다>-그간의 강연원고를 정리하여 

출판한 책을 끝까지 읽게 되었다.

작년에 나온 <보다>-영화 등을 감상하여 보고 감상과 비평을 정리한 책도(예전에) 

읽었었는데


<보다>보다 <말하다>가 김영하작가의 

작가로서의 세계관이나 가치관 

삶을 살아가려는 방식 등을 생생히 엿 볼 수 있어 

<읽는 재미>는 훨씬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이 블로그에서 근래에 계속해오던 방식으로 

까르멘이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은 구절들을 발췌하고

페이지 넘버를 적어서 독후감을 대신하고자 합니닷.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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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적 현실주의와 감성 근육

18page


왜냐하면 어른들의 바람은 늘 그런 식이기 때문입니다. 대학만 들어가라, 졸업만 해라, 결혼만 해라, 아이만 하나 낳아라, 그다음부터는 네마음대로 살아라, 하지만 아무 조건도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날'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20page


제대를 앞둔 병장이 말하기를, 자기는 집안 형편도 어렵고, 소위 말하는 스펙도 변변치 않고, 학벌도 시원찮은데, 자기 같은 젊은이가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그 병사에게 말했습니다.


"음, 잘 안 될 거예요."


그러자 잠들어 있던 병사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눈을 떠야 한다, 이런 직감들이 들었나봐요. 잠에서 깬 병사들에게 말했습니다. 보란듯이 성공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미안하지만, 여러분 앞에는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나는 작가라 여러분에게 성공하는 법 같은 것은 가르쳐 줄 수가 없다. 작가는 실패 전문가다. 소설이라는 게 원래 실패에 대한 것이다. 세계명작들을 보라. 성공한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기껏 고생해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상어들에게 다 뜯기고 뼈만 끌고 돌아온다. <안나 카레리나>의 안나와 <마담 보바리>의 보바리 부인은 자살하고만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는 옛사랑을 얻기는커녕 엉뚱한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젊은 생을 마감한다.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 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니 인생의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


28page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의 대부분은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유산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오래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술과 관련되었다는 겁니다. 글을 쓰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연극에 참여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 여기엔 대부분 큰 돈이 들지 않습니다. 성장률이 제로로 수렴하는 저성장 시대가 이미 도래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툭하면 0퍼센트의 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이민자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그런 일을 겪었을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많이 벌고 많이 쓰고 많이 저장하는 삶은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비관적 인식하에 지금 여기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를 개인적으로, 독자적으로, 개별적으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34page


육체의 근육이 발달한 사람은 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기초대사량이 높아 살이 잘 찌지 않는다고 하지요. 감성근육이 발달한 사람 역시 더 많은 것을 느끼면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잘 느끼는 것은 왜 중요할 까요? 자기 느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와인을 전문적으로 테이스팅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별점을 보고 와인을 고를까요? 평생 음악을 사랑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남의 평가만 듣고 콘서트 티켓을 살까요? 저만 해도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살 때 독자 서평이나 리뷰를 전혀 보지 않습니다. 한 작가가 저에게 한 번이라도 깊은 즐거움을 주었다면 그 즐거움은 제 정신과 육체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만약 그 작품에 실망했다면 그것 역시 고스란히 남습니다. 자신만의 느낌의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한 사람은 타인의 의견에 쉽게 휘둘리지 않습니다. 참고는 하겠지만 의존하지는 않을 겁니다.


36page


많은 돈을 벌거나 명예를 쌓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감각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깊게 느끼는 삶, 남과 다른 방식으로 자기만의 내면을 구축하는 삶, 이런 삶의 방식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잘 느끼자. 감성 근육을 키우자. 그리하여 함부로 침범당하지 않는 견고한 내면을 가진 고독한 개인들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자. 이것이 제가 오늘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39page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고 정확한 내용인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요시모토 바나나가 어릴 때 친구도 안 만나고 책만 읽었대요. 작가의 아버지가 요시모토 다카아키라고 유명한 학자인데, 일본 같은 사회에서 친구 없이 지낸다는 건 좀 위험한 일이다, 아이가 이상하다, 주변에서 걱정을 하니까 그가 그렇게 말했대요. 친구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애가 그냥 책을 읽게 내버려두라, 인간에게는 어둠이 필요하다, 고 했다는 거예요. 동감이에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어둠이에요. 친구들 만나서 낄낄거리며 웃고 떠들면서 세월을 보내면 당시에는 그 어둠이 사라진 것 같지만 실은 그냥 빚으로 남는 거에요. 나중에 언젠가는 그 빚을 갚아야 해요.


44page


역설적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색다른 주장을 하기도 해요. 오히려 알카에다와 테러리즘이 여행을 여행답게 해준다고 말이죠. 고대나 중세에 순례자들이 했던 여행의 방식이 돌아오고 있다는 거예요. 여행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가 다시 왔다는 거죠. 어쨌든 평온했던 40년 동엔에 미국과 서구의 여행자들이 여행 문화를 평준화했어요. 어딜 가도 하얀 침대보가 깔려 있고, 어딜 가도 아메리칸 스타일이죠. 여행지들은 비슷비슷해졌고, 그래서 여행이 가지고 있는 긴장과 흥분 같은 것들이 빠르게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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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른 방식의 여행에 흥미를 갖고 있어요. 관심이 있는 어느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방식의 여행인데요. 예를 들면 로마와 같은 지역에 숙소를 잡아서 오래 머무는 방식이죠. 전통적인 여행보다는 '산책가로서의 여행'으로 관심이 넘어가고 있어요. 여행을 하는게 아니라 옮겨다니면서 사는 삶에 가깝죠.


자기해방의 글쓰기

59page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입니다.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설 내적인 힘을 기르게 되고 자신의 내면도 직시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뭔가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는 직장이나 학교, 혹은 가정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나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겪었거나 현재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한계에 부딪쳤을 때 글쓰기라는 최후의 수단에 의존한 것은 여러분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닙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예술가의 두 가지 사랑

63page


알랭 드 보통 책에 보면 인간에겐 두 가지의 사랑이 있대요. 첫번째 사랑은 떳떳한 사랑, 그건 이성간의 사랑이에요. 두번쨰 사랑은 떳떳지 못한 사랑, 그러니까 인정에 대한 사랑이에요. 부끄러운 사랑이고 그러니까 감추는 거죠. 사실은 나 정말 노래 잘하지 않나요, 소설 잘 쓰지 않나요, 외치고 싶은데 그러면 욕먹으니까 그런 욕망이 없는 척하고 살아가는 거예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평생 감추고 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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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피카소에게 성공하니까 어떠세요 하고 물어보니까, 난 젊어서 인정받았기 때문에 다른 좀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일찍 성공한 것은 예술가로선 축복이었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걸 초월한 사람은 드물죠. 감추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거예요. 세월이 가면서 첫번째 사랑은 많이 사라지는데 두번째 사랑은 계속 가는 거죠.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73page


나중에 보니 피카소는 이런 말도 했더군요.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 이말을 중2 때 알았으면 선생님과 한번 붙어볼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우리 안의 어린 예술가들은 예술의 압제자들에 맞설 충분한 지식과 힘을 갖기도 전에 죽어버리고 맙니다.


76page


그러나 예술가는 '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가 아니라 '돼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로 예술가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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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약물의 도움 없이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뭔가를 시작하려는 우리는 "그건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는 실용주의자의 질문에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 거야""미안해. 나만 재밌어서"라고 말하면 됩니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니까요.


문학은 시공을 초월한 대화

82page


저는 늘 오래된 이야기를 제 버전으로 다시 쓰는 데 흥미를 느낍니다. 그렇게 때문에 고전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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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문학에 대해 백일장, 글짓기 이런 전통이 있어서 제한된 시간 안에 써내는 글솜씨 정도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문학의 본질은 그런 시간과 공간을 모두 초월한 대화예요. 그런 대화에 맛을 들이면 현실의 인간과의 대화를 오래할 수 없게 돼요. 더 근사한 게 있는데 시시하게 뭘 굳이 이야기하죠?


소설이라는 우주 속의 아주 작은 '나'

89page


아마도 칼 세이건의 말일 텐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이었어요.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내 생애에 우주를 전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


작가의 권능

91page


저는 작가로서 전지전능하지는 않아요, 그들을 컨트롤할 수도 없고요. 그 인물들은 스스로 움직이는데, 저는 단지 그 움직임이 시작되도록 스위치를 올리는 셈이에요. 그런데 그걸 저만 할 수 있어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고 일종의 문지기예요. 연극이 펼쳐질 극장의 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저예요. 그런데 그 열쇠를 가지고 제가 멀리 떠나 있는 거예요. 빨리 돌아가서 인물들을 다시 움직이도록, 과테말라도 가고 여기저기도 다 가도록 해야 하는데 키를 가진 한심한 놈이 다른 일 때문에 안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제가 전지전능한 신이고 인물들이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인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저는 얼른 가서 문을 열어줘야 되는거죠.


최고의 소설이란

92page


다 읽었는데 밑줄을 친데가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사랑하게 되는 소설. 읽으면서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걸린데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도 왠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남에게 요약하거나 발췌하여 전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런 소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99page


결국 인간은 이미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며 발버둥치다가 마침내 그 운명으로 걸어들어가는 존재라는 거죠.


작가란 늙지 않는 발레리나

165page


작가로 한 10년 15년 살다보면 인생의 스토리라는 게 생겨요. 내 인생의 전체적인 그림, 당장 쓰고 있는 이야기들의 문제, 이것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갈 것이냐, 내가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면서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냐, 이런 것을 고민하는 데만도 시간이 너무너무 많이 들어요. 발레리나는 매일매일 자기 몸에 주목하잖아요. 아침에 일어나 온몸의 근육을 풀면서 하루를 시작하고요. 작가도 그렇게 자기 자신의 글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독자는 고맙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저와 다르다는 것거죠. 제 인생의 구경꾼인 거예요. 잠깐 보고 좋아할 수도 있고 어떤 판단을 내릴 수도 있어요.


169page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잘 모르는 바로 그것을 내놓으라'는게 문학 독자의 욕망인 것처럼 보입니다. 


소설이라는 매개물

171page


소설의 의미는 이렇다고 봐요.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으면, 두 자아의 대화가 가능해져요. 우리 보통 사람들의 자아는 너무 연약해서요, 어떤 매개물 없이 맞부딪치면 살이 쓸려요. 오래 접촉하면 안 돼요. 그럼 뭐가 필요하냐. 두 연약한 자아를 중개할 매개, 서사물이 필요해요. 그래서 친구에게 책을 선물한다고 생각해요. 대화가 가능해지는 거죠. "<여행>봤냐? 그런 남자 만나면 안 되겠다, 야." 만약 이런 매개물 없이 남자와의 아픈 경험, 끔찍했던 경험을 말로 얘기하려고 하면, 다 울어요. 집단 심리상담 같은 걸 보면, 날것 그대로 이야기하면서 감정을 터뜨리잖아요.


첫사랑 같은 책

181page


백 명의 독자가 있다면 백 개의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그 백 개의 세계는 서로 완전히 다릅니다. 읽은 책이 다르고, 설령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그것에 대한 기억과 감상이 다릅니다. 자기 것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대에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 고유한 나, 누구에게도 털리지 않는 내면을 가진 나를 만들고 지키는 것으로서의 독서. 그렇게 단단하고 고유한 내면을 가진 존재들, 자기 세계를 가진 이들이 타인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세계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