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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발췌하면서

by 까르멘 2015. 6. 2.

 

 


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양억관 옮김


독후감 대신 눈에 띄는 구절들을 발췌하는 것이 

원작의 느낌을 잘 전달할 것만같고 

본문전체를 읽어보고싶은 생각도 하게 되어 

책도 직접 찾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 작업을 해봅니다.


블로그 <숨어있기 좋은 방>에서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이 "독후감 대신 인상깊은 구절 발췌정리하기" 작업이 

한동안 지속되다 보면 

이 블로그에 멋진 서재가 하나 마련되어지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1980년대 후반에 책이 출간되었는데 

지금 읽어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소설책입니다. 

한국에는 <상실의 시대>로 더 많이 알려진 책입니다.


 

21p


아주 오래전, 내가 아직 젊고 그 기억이 더욱 선명했을 때, 나는 몇번이나 나오코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처음 한줄이라도 나와만 준다면 그 다음에는 물 흐르듯 쓰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 한 줄이 아무리 애써도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도 선명해서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지나치게 자세한 지도가 자세함이 지나치다는 그 이유 때문에때로 아무 역할도 못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결국 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생각뿐이다. 그리고 나오코에 대한 기억이 내 속에서 희미해질수록 나는 더 깊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왜 나에게 "나를 잊지 마."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물론 나오코는 알았다. 내 속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리라는 것을. 그랬기에 그녀는 나에게 호소해야만 했다. "나를 언제까지나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줘."하고

 

43p


기즈키에게는 분명 냉소적인 기질이 있어 남의 눈에는 오만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뿌리부터 친절하고 공정했다. 셋이 있을 때, 그는 나오코와 나에게 공평하게 말을 건네고 농담도 던져 누구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배려했다. 어느 한쪽이 오래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쪽에 말을 걸어 자연스럽게 입을 열게 했다. 그럴 때마다 기즈키도 참 애를 많이 쓴다는 생각도 했지만, 사실은 그리 힘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자리의 분위기를 순간순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또한 거기에 더해 별것도 아닌 상대의 이야기 가운데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참으로 보기 드문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그와 이야기하다보면, 나 자신이 아주 재미있는 인간이고 아주 재미있는 인생을 사는 듯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51p


그런 생활은 고등학교 시절의 그녀를 아는 나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늘 화사한 옷을 입고 많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방을 보자니 그녀 또한 나처럼 대학이란데 들어가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환경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대학으로 정한 건 우리 고등학교에서 여기 오는 애가 하나도 없어서야." 나오코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여기로 온 거야. 친구들은 다들 대체로 세련된 대학에 갔거든. 알지, 그런 거?"


87p


여름 방학 동안 대학 당국은 경찰에 출동을 요청했고, 기동대는 바리케이트를 부수고 농성 중인 학생들을 모두 체포했다. 그즈음 어느 대학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딱히 특별한 일이라 할 수도 없었다. 대학 해체 따위는 없었다. 대학에는 거대한 자본이 투하되었는데, 그런 조직이 학생들이 들고 일어서는 정도로 '에, 알았습니다.'라며 얌전하게 해체를 받아들일 리 없다. 물론 대학을 바리케이트로 봉쇄한 그들 또한 진심으로 해체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학이라는 조직의 주도권 변경을 갈구했을 따름이고, 나에게는 그 주도권이 어디에 있든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러므로 동맹 휴교가 분쇄되든 말든 특별한 감회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9월에 들어 대학이 거의 폐허로 변했기를 기대하고 가보았지만, 대학은 아무 상처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도서관의 책도 약탈당하지 않았고, 교수실도 파괴되지 않았고, 학생과 건물도 불타지 않았다. 놈들은 대체 뭘 한거야, 나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동맹 휴교가 해체되고 기동대가 점령한 가운데 강의가 시작되자 맨 먼저 출석한 인간들도 동맹 휴교를 주도한 녀석들이었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교실에 나와 필기를 하고 이름을 부르면 대답을 했다. 정말 이상한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동맹 휴교 결의는 아직도 유효했고, 어느 누구도 동맹 휴교가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이 기동대를 불러들여 바리케이트를 깨부수었을 뿐 원칙적으로 동맹 휴교는 아직 계속 중이다. 그들은 동맹 휴교를 결의할 때에는 강력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며 반대하는(또는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들을 매도하고 때로는 반동분자로 낙인찍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다가가서 왜 동맹 휴교를 계속하지 않고 강의를 듣느냐고 물어보았다. 다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대답할 말이 있을리 없었다. 그들은 출석 일수 부족으로 학점을 못 따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그런 작자들이 대학 해체를 부르짖었다고 생각하니 진짜 어이가 없었다. 그런 천박한 작자들일수록 바람만 조금 바뀌어도 큰소리를 내거나 기가 죽어 버리거나 하는 것이다. 


어이, 기즈키, 여긴 정말 말도 안되는 세계야, 하고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이런 놈들이 학점을 따서 사회에 나가 이 세상을 천박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얼마간 강의를 나가서도 출석을 부르면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짓을 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그러지라도 않으면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우리 과에서 내 입장은 더욱더 고립되었다. 출석을 부를 때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강의실 공기가 아주 어색해졌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 또한 아무한테도 말을 걸지 않았다.


9월 두 번째 주에 나는 대학 교육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대학 4년을 지겨움을 견뎌 내는 훈련기간으로 삼기로 작정했다. 여기서 대학을 그만두고 사회에 나간다고 해서 무슨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매일 학교에 가서 강의를 듣고 필기를 하고 쉬는 시간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기도 하고 조사를 하기도 했다. 


104p


키 큰 학생이 전단을 나누어 주는 동안 어려 보이는 둥근 얼굴이 단상에 서서 연설을 했다. 전단에는 세상 모든 것을 단순화 하는 독특하고 간결한 글씨체로 "기만적 총장 선거를 분쇄하고""새로운 전학련 동맹 휴교에 온 힘을 집결하여""일제=산학협동 노선에 철퇴를 가하자."라는 문구가 적혔다. 연설도 멋지고 해서 딱히 반론을 펼 생각은 없지만, 문장에 설득력이 없었다. 신뢰성도 없고 사람 마음을 끄는 힘도 없었다. 둥근 얼굴의 연설도 마찬가지였다. 늘 듣던 오래된 유행가였다. 같은 멜로디에 가사의 조사만 살짝 바꾼 것이었다. 이들의 진정한 적은 국가 권력이 아니라 상상력의 결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55p


어느 날, 담당 의사한테 그런 말을 했더니 내가 느끼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옳다고 했어. 그는 우리가 여기에서 생활하는 것은 뒤틀림을 교정하려는 게 아니라 그 뒤틀림에 익숙해지기 위한 것이라고 했어. 우리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그 뒤틀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사람마다 걷는 버릇이 다 다르듯이 느끼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 보는 방식이 다른데 그것을 고치려 한들 쉽게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고치려다가는 다른 부분마저 이상해져 버린다고 말이야. 물론 이건 아주 단순화한 설명이고, 그런건 우리가 품은 문제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난 어쩐지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어. 우리는 분명 자신의 뒤틀린 부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건지도 몰라. 그래서 그 뒤틀림이 불러일으키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고뇌를 자기 내면에 정리하지 못하고,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여기 들어온 거야. 여기 있는 한 우리는 남을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고, 남에게 아픔을 당하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뒤틀림'이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이런 점에서 외부 세계와 이곳은 완전히 달라. 외부 세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뒤틀렸음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세계에서는 뒤틀림이야말로 존재의 조건이야. 인디언이 머리에 자기 부족을 상징하는 깃털을 꽃듯이 우리는 뒤틀림을 끌어안고 있어. 그리고 서로에게 성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용히 사는 거야.


157p


이 시설의 유일한 문제점이라면 일단 여기 들어오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내키지 않거나 두려워진다는 거야. 이곳에 있는 한 평화롭고 마음이 안정돼. 자신의 뒤틀림에 대해서도 자연스러운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스스로가 회복되었다는 느낌을 받아. 그렇지만 과연 바깥 세계가 우리와 같은 느낌으로 우리를 받아들여 줄지 확신을 가질 수 없어.


205p


"나는 이즈에 있는 할머니네 집으로 가서 잠시 쉬기로 했지. 그 콩쿠르를 포기하고 거기서 잠시 아무 생각 없이 쉬자고. 두 주 정도 피아노를 만지지 않고 멋대로 놀아 보자고 말이야. 그렇지만 불가능했어. 뭘 하든 머릿속에서 피아노가 떠나지를 않았어.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거야. 평생 새끼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건 아닐까? 만약에 그런다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그런 생각만 다람쥐 챗바퀴 돌듯 하는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해. 그때까지 내 인생은 피아노뿐이었으니까.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그것 하나만 생각하며 살아온 인생이었으니까. 피아노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어. 손가락을 다쳐서는 안 된다고 해서 집안일도 해 본 적이 없고, 피아노를 잘 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잘 대해 줬고, 그렇게 살아온 여자애한테서 피아노를 빼았아 봐, 대체 뭐가 남을까? 그래서 펑! 머리에서 나사 하나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거야. 머리에서 쥐가 내려 캄캄해져 버렸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