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대신 눈에 띄는 구절들을 발췌하는 것이
원작의 느낌을 잘 전달할 것만같고
본문전체를 읽어보고싶은 생각도 하게 되어
책도 직접 찾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 작업을 해봅니다.
블로그 <숨어있기 좋은 방>에서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이 "독후감 대신 인상깊은 구절 발췌정리하기" 작업이
한동안 지속되다 보면
이 블로그에 멋진 서재가 하나 마련되어지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에는 LTCM의 흥망을 다룬 <천재들의 실패>입니다.
발췌한 부분이 많아서 이번 것은 분량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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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실패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이승욱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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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르러 큰돈을 굴리는 사람들 몇몇이 악명을 날리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민자 출신의 통화 투기꾼 조지 소로스다. 1992년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영국의 중앙은행을 ‘깨뜨리고’(그가 가차없이 공매한) 파운드화를 평가절하하도록 몰고 간 일로 유명해졌다. 이 성공으로 그는 10억 달러를 벌었다. 소로스를 비롯하여 줄리언 로버트슨과 마이클 스테인하트같은 고수익을 올린 장본인 덕분에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시장을 마음대로 휘젓는 해적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스테인하트는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야말로 첨단 자본주의의 얼마 남지 않은 성채’라며 거들먹거렸다. 그들의 대중적인 이미지는 허세를 부리며 리스크를 감수하며 엄청난 돈을 거머쥐든가, 아니면 무시무시한 손실을 입든가 하는 도박꾼이었다. 그래서 1998년도 판 ‘웹스터 사전’에는 헤지펀드를 가리켜 ‘리스크가 높은 투기적 방법을 사용하는 펀드’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헤지펀드는 안전하게 운용되었고, 바로 이점이 헤지펀드가 매력적인 실제 이유였다. ‘헤지펀드’라는 용어는 ‘베팅을 헤지한다(to hedge one’s best)’는 용법에서 나온 구어적 표현으로, 투자 손실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다른 쪽에도 건다는 뜻이다. 이 말은 경계선 내지 구역 설정용으로 세워놓는 일반적인 정원의 ‘울타리(hedge)’개념에서 발전되었는데, 셰익스피어에 의해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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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레드 존스를 본따 메리웨더도 채권시장에서 ‘상대적 가치’를 거래하는 데 중점을 두고 LTCM을 운영하려 했다. LTCM은 오를 채권과 내릴 채권의 짝을 맞추고, 그에 따라 특정 채권은 사고 다른 채권을 파는 식으로 나누어 베팅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탈리아의 금리가 독일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면서(즉 이탈리아의 채권이 독일의 채권보다 상대적으로 싸다는 의미다.), 이탈리아에 투자하고 독일 것을 공매한 트레이더는 이 두나라의 금리차(스프레드)가 좁아짐에 따라 돈을 벌 수 있다(물론 좁아져야만 그렇게 된다). 이것이 바로 리스크 부담이 낮은 투자 전략이다. 채권은 비슷하게 오르고 내리기 때문에, 금리차이는 채권 자체보다는 덜 오르고 내린다. 존스의 펀드와 같이 LTCM도 이론상으로는 시장 등락, 심지어 시장이 붕괴되는 경우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었는데, 메리웨더는 처음부터 펀드 자본의 20~30배 내지 그 이상의 ‘차입투기’를 계획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LTCM의 필수적이 전략이었는데, 그 이유는 사려고 하는 채권과 팔려고 하는 채권의 가격차이가 대개는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 작은 차이를 가지고 적절한 수익을 만들자면, LTCM은 돈을 빌려서라도 배팅을 수십 배로 불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전략은 놀이터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꼬마가 시소를 가지고 제 힘보다 몇배의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듯이, 빌려온 돈을 갖고 자신의 자본으로 돈을 버는 것처럼 돈을 벌 수 있다. 따라서 차입투기는 힘을, 그러니까 돈을 벌어들이는 힘을 몇 배나 늘려주는 방법이다. 물론 잃을 때의 타격도 그만큼 크다. 어떤 이유로든 LTCM의 전략이 실패하면, 손실이 엄청날 것이고 또 빨리 닥쳐올 것이다. 손실은 치명적일 수 있었다. 다만 당시로서는 요원하기만 할 일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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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LTCM의 가장 간단한 거래 중 하나였는데도 실상은 훨씬 더 복잡했다. 그들은 구 채권을 사자마자 이것을 다른 월스트리트의 회사에 빌려주고 돈을 끌어다 썼다. 그리고 다시 그 돈을 자신들이 빌린 채권의 담보로 사용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이런 단기의 부담보부 대출을 ‘환매계약금융’이라고 불렀다.
LTCM의 현금거래는 완벽하게 수지 균형이 맞았는데, 그것은 실로 ‘트레이드의 미학’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장기물에 사용한 돈은 공매해서 받은 돈과 일치했다. LTCM이 담보로 지불한 돈은 LTCM이 담보로 받은 돈과 일치했다. LTCM은 20억 달러짜리 거래를 하면서 자기 주머니에서는 동전 한 푼도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당신이 가령 메릴린치로부터 채권을 빌리고자 한다면, 당신은 채권 액수보다 약간 많은 담보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1,000달러짜리 재무부 채권이라면, 1,010달러, 좀 더 위험도가 높은 채권이라면 그보다 약간 더 많아야 한다. 채권 가치의 1%에 상당하는 최초 마진 10달러를 ‘헤어컷’이라 하는데, 이것은 채권 값이 오를 경우에 메릴린치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 된다.
헤어컷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거래를 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헤어컷을 피할 수 있다면, 거래 한계가 없어진다. 이것은 기름없이도 차를 달릴 수 있는 것과 같아서 가고 싶을 때까지 갈 수 있게 된다.
출범할 때부터 LTCM은 헤어컷을 지불하지 않거나, 그렇지 않으면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 원칙은 메리웨더로부터 나온 것이 분명하다. 평소에는 얌전하지만 트레이딩이나 골프, 당구, 경마, 기타 자신이 손대는 것이면 무엇에든지 무섭게 경쟁적인 이 인물로부터 말이다. 은행가들과의 회의는 힐리브랜드도 동행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온건하고 느긋한 성격의 로센펠드와 레하이가 맡았다. 이 파트너들은 정중하지만 완강한 태도로 펀드는 잘 운용되고 있으므로 최초 마진을 지급할 필요가 없으며, 이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한 어떤 은행과도 거래하지 않는다고 고집했다. 메릴린치는 통상적인 헤어컷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기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대를 한 페인웨버만은 LTCM과 단 한 건도 거래하지 못했다. “그들과 거래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소.” 메리웨더의 라이벌인 골드만삭스의 존 코진은 그렇게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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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변동성’이라는 주식이나 증권은 없고, 거기에 돈을 걸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도 없다. 그러나 간접적인 방법은 있다. 블랙-숄스의 공식에 따르면, 옵션의 가격을 매기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해당 자산의 기대되는 변동성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자. 자산의 가격이 뛸 때, 옵션의 가격은 올라간다. 그러므로 옵션의 가격을 안다면, 시장이 기대하는 변동성의 수준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비유가 도움이 될 것이다. 플로리다의 날씨에 직접적으로 돈을 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특정 시기에는 서리가 내릴 가능성에 따라 오렌지 주스의 선물 가격이 등락한다. 사실 경험 많은 트레이더라면 오렌지 주스 가격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시장에서는 이번 겨울이 추울 것이며, 그에 따라 오렌지의 품귀현상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그 트레이더가 시장의 예측이 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렌지 주스를 공매함으로써 이득을 보고자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LTCM은 옵션시장이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대략 20%로 예상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LTCM은 실제의 변동성이 15%였기 때문에 시장의 예측은 틀렸고, 옵션 가격은 하락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LTCM은 매도를 시작했다. 특히 S&P 지수 500과 유럽 주요 시장의 이와 같은 지수들에 포함된 주식의 옵션을 공매했다. 그들의 은어를 빌려 말하자면, 교수들은 ‘변동성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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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스커는 이러한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트레이더인 매트 자매스와 환매계약금융 담당인 마이크 레이스먼을 다급히 불러 그 뉴스를 전했다. 한 직원은 찡그린 얼굴로 “하느님 맙소사!”라고 외쳤다. 트레이더들은 이 같은 움직임을 결코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1987년과 1992년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LTCM의 모델은 그렇게 오래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았다. LTCM이 아는 한 그것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대사건으로서, 펀드가 전혀 대비하지 못한 일이었다. 한 애널리스트는 집에 있는 트레이더에게 전화해 “스왑 스프레드가 얼마나 더 올라갈 것 같습니까?”하고 물었다. 애널리스트의 말을 들은 트레이더는 “젠장, 다시는 집으로 전화하지 마!”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금요일 날에 LTCM은 투자한 모든 곳에서 돈을 잃었다.
모든 곳에서 손실이 발생했다. 모든 범위에서 너무도 빨리 손실이 발생하여,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파트너들은 마치 버림받은 듯이 느껴졌다. 과학의 신이 쫓겨나고 보이지 않는 악마의 힘이 그들의 운명을 사로잡기라도 한 듯이 파트너들은 갑자기 통제력을 잃었다. 해골같이 변해버린 그리니치의 요원들은 필사적으로 다른 파트너들을 찾아 전세계에 전화를 걸었다. 빅터 하가니는 이탈리아에 있었다. 그는 런던으로 급히 돌아왔다. 에릭 로센펠드는 2주간의 휴가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 아이다호의 선밸리에 막 도착했다가 벌개진 눈을 하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메리웨더는 중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파트너들은 베이징에서 저녁식사 중이던 메리웨더를 찾아냈고, 그는 다음 비행기로 돌아왔다. 중국에서 떠나기 전에 메리웨더는 골드만삭스의 CEO이자 LTCM의 주요 거래 상대인 존 코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심각한 손실을 입은 것 같아요. 하지만 곧 괜찮아질 겁니다.” 메리웨더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회사가 하루에 3,500만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을 일은 거의 없다고 고도의 수학적 정확성으로 계산하던 LTCM은 그 금요일 날에 자본의 15%에 상당하는 5억 5,500만 달러를 잃었다. 연초에 46억 7,000만 달러에 달하던 것이 순식간에 29억 달러로 줄었다. 4월 말 이후로 LTCM은 순가치의 1/3 이상을 잃고 만 것이다. 크레디트 리스크를 모니터링한다던 베어스턴스의 마이클 앨릭스는 주요 고객이 입은 심각한 손실이 우려되어, LTCM의 재무 담당 부사장 로버트 슈스태크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슈스태크는 회사의 유동성을 면밀하게 점검했다. 이 때 앨릭스는 슈스태크의 침착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 뒤 수주 동안 그는 슈스태크를 비롯하여 다른 여러 파트너들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포커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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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파트너들은 버핏이 살로먼에서 메리웨더를 쫓아낸 일에 대해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시골 억만장자의 설교하는 취향, 특히 그가 우량주를 사서 장기보유하는 방식의 투자나 고집하고 모델에 의거하여 투자하는 최신 기법을 조롱하는 취향 때문에 더더욱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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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들은 나중에 LTCM 멤버들이 얼마나 잘 단합되어 있었는지에 대해 여러 말을 하게 되지만, 사실 그것은 그들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을 뿐이다. 단합될수록 파트너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자신들끼리 뭉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들은 잠시 자신들들의 분노와 신랄한 혐오심을 억제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사무실에 나와 있기만 해도 회사의 출혈이 덜해지기라도 한 듯이 새벽같이 나와 밤늦게까지 일했다. 그들은 거래를 정리하고, 옛 거래 파트너들을 공략하며, 새로운 투자가들을 끌어들이고, 은행을 상대하느라 몇 시간씩 통화에 매달렸다.
로센펠드와 레하이는 사기를 유지하고자 애썼다. 그들은 스태프들에세 “우린 곧 괜찮아질 거야. 유동성이 풍부한데다가 새로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거든. 단지 조금 규모를 줄이는 것뿐이야. 리스크가 너무 높아서 말야”라고 말했다. 파트너들은 자주 회의실에 모여서 커튼을 내려 엿보는 시선을 차단한 후, 자신들의 문제를 은밀히 논의했다. 회의가 끝나면 스태프들이 무슨 논의가 있었는지 물었지만, 파트너들은 거의 대꾸하지 않았다. 힐리브랜드는 아무 말도 들은 것이 없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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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반은 탄탄했지만, 금융시장은 지나친 차입투기와 지나친 확장에 시달리고 있어 월스트리트 전체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머턴의 모델이 가정했던 냉정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트레이더는 과거에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도처에 공황 심리만이 판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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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크레디트 스프레드 역사상 최악의 달로 기록되었다. 과거에는 그렇게 부풀어오른 스프레드는 경제 붕괴의 전조였다. 그러나 이번 경우엔 실물 경제에는 불황의 흔적도 없었다. 아마도 약간 둔화되기는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채권시장의 붕괴는 경제 전반의 흐름이 아니라 월스트리트만의 지나친 낙관주의(그리고 지나치게 많은 차입투기)가 빚어낸 공포에 의한 것이었다.
파트너들은 낯선 장소에, 모델의 신봉자들로서는 탐험해 본 적이 없는 그런 곳에 와 있었다. 스태비스는 파트너들이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유형의 변동성’에 부딫혔다고 느꼈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8월과같은 손실의 가능성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우주의 생성 이래 한번 있을까말까 한, 아니 우주가 여러 번 생성되었다 사라진다고 해도 있을 법하지 않은 기묘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메리웨더가 머턴과 숄스를 시켜 멋지게 작성한 펀드의 리스크에 대한 가정을 회사의 투자가들에게 자신있게 써 보낸 지 4년도 채 안되어 LTCM에 일어난 것이다. 아아, 슬프도다! 파트너들의 말버릇대로 “(거래들 간의)상관 관계는 1에 가깝다.” LTCM은 모든 배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손실을 입었다. 주사위는 무작위적으로 던져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악의에 찬 누군가에 의해 던져진 주사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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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파트너들은 불길한 패턴을, 즉 자신들의 거래가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더 많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잠시 동안 정크본드의 오름세가 있었지만, LTCM이 가진 몇몇의 것들은 여전히 오르지 않았다. 이와 유사하게 스왑 스프레드는 독일에서보다 영국에서 더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LTCM이 배팅한 방향과는 정반대였고, 납득할 만한 아무런 경제적 이유가 없었다. 독일에서 스왑 스프레드가 45포인트 근처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사이 영국에서는 82포인트로 뛰어올랐다. “이건 말도 안돼.” LTCM의 한 트레이더가 짜증을 냈다. 만약 영국이 ‘우량처로의 피난’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면, 독일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논리적이든 아니든 간에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들은 가라앉으려는 배에서 달아나는 쥐들처럼 LTCM의 거래로부터 달아났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LTCM은 자금을 찾아 헤매는 동안 이것저것에 대해서 약간씩, 나아가 포트폴리오 전반에 대해서도 공개를 해야만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비밀고수주의에 철저하던 헤지펀드가 장부를 모두에게 공개하고 만 것이다. 빈센트 매톤이 말했듯이, 시장은 약한 자를 밀어내는 공모에 가담했다.
더욱이 메리웨더의 서한 덕분에 월스트리트 전체가 LTCM의 문제를 알고 있었다. 라이벌 회사들은 LTCM의 매도 사태에 깔리기 전에 먼저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문제를 감지하면서 모두들 나가기 시작했어요.” 당시 살로먼의 트레이더였던 커스터스 캐플래니스는 말했다. “LTCM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서였지요.” 경쟁회사들이 LTCM의 거래에서 득을 보면서도 자신들을 위해 LTCM의 포지션을 정리하는 현실을 레하이는 뼈저린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힐리브랜드는 틀린 적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일단 비밀을 털어놓으면 벌거벗은 채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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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파트너들은 예전에 그들에게 모든 문을 열어주었던 불패의 후광을 잃어버린 뒤였다. 그들에게 화려한 경력은 있었지만 마법은 없었다. 그리고 마법이 없는 한 그들은 또하나의 평범한 펀드일 뿐이었다. 메리웨더는 출판업계의 거물인 지프 형제를 끌어들여 LTCM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수수료를 3년 동안, 딱 3년 동안만 깎아주겠다고 제의했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그러한 미끼가 통했겠지만, 지금 메리웨더가 디스카운트를 한시적으로 제의한 것은 지프 형제에게는 오만으로 비칠 뿐이었다. 그것은 월스트리트의 한바탕 일장춘몽이었다. 매니저가 높은 수수료를 받으면 투자가들은 무조건 문을 두드리지만, 수수료를 낮추는 순간 가차없이 떠나버린다.
믿을 수 없게도 LTCM의 시장은 점점 더 위축되어갔다. 리스크 차익거래의 스프레드는 1987년의 위기 이후 최대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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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채권시장이 붕괴되었을 때, LTCM과 같이 변동성의 통계적 모델에 따라 리스크 한도를 정했던 골드만삭스는 고투 끝에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골드만삭스의 차입거래 포지션이 다른 트레이더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심각한 손실 없이 빠져나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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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깔린 모든 종류의 자산에서 시장은 이 그리니치의 헤지펀드에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러한 사태를 회사의 변호사 리커즈는 ‘LTCM 죽음의 거래’라고 표현했다. 상관관계는 1이 되었다. 모든 주사위 쌍이 연속 1이 나왔다. 수학자들은 이런 일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작위적인 시장이 검은 양 다음에 흰 양, 동전의 앞면 다음에 뒷면, 잭 다음에 듀스가 나오는 정상분포를 이끌어내리라고 생각했지, 모든 거래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엄청난 손실을 이끌어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교수들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던 만고의 진리, 즉 시장에서 양 극단은 항상 부풀어 있다는 진리를 외면했다. 그들은 뉴욕의 수많은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멀리 떨어진 자신들의 유리 궁전 속에서 트레이더들이 무작위로 움직이는 분자나 힐리브랜드와 같이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라, 욕심과 공포에 의해 움직이며 극단적인 행동이나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보통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8년 늦여름에 채권시장의 사람들은 특히 위험한 신용에 대해 극단적으로 공포에 질렸다. 이것을 교수들은 모델링하지 못했다. 그들은 시장을 정확하게 예언 가능한 것으로 프로그래밍하면서, 정작 현실의 트레이더들을 지배하고 있는 본능, 약탈적이고 탐욕적이며 무조건 보호 받으려는 본능은 망각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인간적 요소’를 잊었던 것이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뿐만이 아니었다. LTCM의 포트폴리오에 대한 정보는 이제 사방에 다 알려졌다. 살로먼은 펀드의 포지션을 몇 달째 두들겨대고 있었다. 도이체 방크는 스왑 트레이더에서 빠져나갔고, 예전에는 주식 변동성에 전혀 관심이 없던 아메리칸 인슈어런스 그룹이 갑자기 주식 변동성의 입찰에 나서고 있었다. LTCM의 고통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왜 갑자기 그런 관심을 보였겠는가? JP모건과 UBS 역시 변동성을 사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행동은 확실히 약탈적인 것이었다. 그 게임은 월스트리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목적은 간단했다. 만약 LTCM이 시달림을 당할 만큼 당하면, 두손 들어 항복하여 자신들이 공매한 주식을 다시 사들일 것이다. 그러면 그 포지션의 소유자들은 누구나 한몫 잡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와 같은 약탈적인 거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덜했고, 나중에 그리니치가 주장한 피해 망상적인 가설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세계에 대한 파트너들의 일방적인 시각이 음모설을 상당히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지게 했는데, 특히 그러한 설명을 통해 자신들의 손실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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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자유 시장의 원리가 이러한 거품을 자연스럽게 없애준다. 예를 들어 1980년에 헌트 형제가 은 시장의 매점을 시도하여, 잠시 동안 은의 가격이 1온스에 50달러까지 치솟은 일이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락을 뒤져 잘 챙겨두었던 은을 꺼냈고, 고물 상인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은의 가격을 하락시켰다. 또한 여기저기서 모인 은들이 시장에 나돌게 되자, 가격은 다시 1온스에 5달러로 내려갔고, 헌트 형제는 파산 신고를 했다. 그러나 주식 변동성은 일반적이지 않은 거래다. 아무도 변동성을 다락에 저장해 두지 않았고, 공급을 위한 여분의 자원도 없었다. “주식 변동성이 결정적인 고비였습니다.”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LTCM의 직원이 말했다. “겨우 네다섯 명의 딜러밖에 없었는데, 아무도 팔려고 하지 않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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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고객이 파산해도 대출해 준 사람은 마진의 형태로 담보를 가지고 있겠지만, LTCM의 경우에는 이론적으로 아예 아무것도 못 건질 수도 있었다. 은행들이 LTCM에 헤어컷을 면제해 주면서까지 자금 지원을 해준 것이 펀드가 한계점까지 운영되도록 도와준 격이 되었다. 이제 만약 LTCM이 도산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
당연히 대출을 해준 은행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인한 공포에 질렸다. “우린 그들이 문제에 부딪히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리스크 관리 전문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바로 그들이 리스크 관리를 고안하고 가르쳤단 말입니다.” 파트너들과 아일랜드에서 골프를 치며 즐겼더 메릴린치의 리스크 매니저 대니얼 나폴리는 말했다. “하느님도 잘 아시지만, 우린 노벨상 수상자들과 일했어요!”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단히 지적인 깡패만이 월스트리트를 그런 지경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보통사람이라면 그만한 자금을 얻지도 못할 것이고, 그런 거품을 낳게 한 추종자들도 끌어들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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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리브랜드는 관리들에게 LTCM의 대다수 직원들조차 본 적이 없는 기밀문서, ‘리스크 총계’를 보여주었다. LTCM의 포지션 대부분은 다중적이 거래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파생상품 장부는 한 가지 계약 건이 다른 계약 건들의 발단이 되는 기괴한 계약들로 채워져 있었다. ‘리스크 총계’는 각각의 개별 시장에 대한 LTCM의 노출도를 요약함으로써 포트폴리오를 단순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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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토록 많은 거래들이 한꺼번에 몰락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포트폴리오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피셔는 LTCM의 거래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래들은 거래가 실행되기 전부터 상호 연관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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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씩, 두 사람씩, 월스트리트의 최고의 은행가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경거망동과 무모한 자금 지원, 이기적인 고객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던 실속 없는 시도로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은 어마어마한 실수를 합작해서 저질렀던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LTCM의 잔해나마 가능한 많이 빼앗기 위해 무자비하게 굴었지만, 그럼으로써 이제는 자신들 역시 동반 몰락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씩, 두 사람씩 그들은 자신들의 본성과는 반대되는 일, 즉 ‘협력’을 해야 될 것 같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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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대공황 이후 미국은 더러 시장이 하락세에 들어선 적은 있었지만 진정한 붕괴를 경험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금융 아마겟돈에 대한 공포가 자연 재앙이나 대규모 컴퓨터 오류가 일어났을 때와 같은 그럴 듯한 시나리오의 형태를 갖추고 상상력의 극단을 자극했다.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시스템의 위기가 현실적으로 어떤 위험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시스템의 위기란 말 자체가 모호하고 불분명했다. 그럼에도 금융 감독관들은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셔가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아시아는 깊은 불황 내지 일시적인 경기 후퇴로 고통을 겪고 있었고, 러시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으며, 남아메리카는 기로에 서 있었다. 미국의 경우 대폭 벌어진 크레디트 스프레드는 빌려주던 사람들이 더 이상 빌려주기를 거절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전형적인 경기 수축의 신호였다. 하루 전날인 9월 21일, 재무부 채권의 수익률은 바닥을 쳐서 5.05%가 되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 경제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재무부 채권은 완전히 현재의 공포를 재는 척도가 되었다.”라고 보도했다. 재무부 채권 외의 채권이 모두 공포의 원천이었다.
스위스에서 브라질을 거쳐 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주식은 모든 곳에서 폭락했다. 월스트리트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보았다면, 아마도 피셔는 미국 경제가(월스트리트에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 경제는 이미 불황에 빠져 있던 1929년과는 달리) 여전히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금융 위기, 루빈 장관이 50년 만에 최악이라고 한 위기가 찾아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연준의 마음속에 금융 위기는 확실히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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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은행가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LTCM 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리니치의 ‘나쁜 놈들’로부너 돌려받을 만큼은 다 받은 뒤였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파트너들은 파트너들대로 각 은행들에 대해 가장 좋은 건만 챙기면서도 자신들의 우월감을 감추려 하지도 않았었다. 이제 파트너들은 그 죄값을 치르게 된 셈이었지만, 은행가들은 자신들이 순전히 이용당하기만 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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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리브랜드의 기괴한 행동을 지켜보던 은행가들은 자신들이 왜 여기에 와 있나 하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들은 개인 입장에서는 파트너들을 돕고 싶지 않았다. 단지 두려움 때문에 계약에 참여할 뿐이었다. 앨리슨은 구제 계약 사실이 발표된 이 시점에서 LTCM이 무너진다면 시장이 더 나쁠 것이라고, 훨씬 더 나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여기에는 메릴린치의 평판 또한 달려 있었다. LTCM의 변호사는 앨리슨이 계약 성사를 얼마나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겁쟁이 게임(치킨게임)’을 능수능란하게 펼쳤다. LTCM의 변호사인 벨은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컨소시엄측이 ‘당신들은 우리 외에 다른 대안이 없소’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도 ‘당신들도 우리 외엔 대안이 없잖소’라고 응수했지요.” 채권자들 역시 채무자들에게 발목이 붙잡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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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연준은 시장의 입지를 리스크 관리와 압력받을 때의 손실법칙이 적용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예측 불가능한 극단으로 움직이게 했다. -LTCM 대외비 비망록,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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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 28일, 구제 이후 정확히 1년 만에 스왑 스프레드는 93포인트에 머물러 있었고, 주식 변동성은 30%였다. 두 가지 모두 LTCM이 각각의 거래에 들어갔을 당시보다 높았다. 구제 1년 뒤에 펀드는 10%의 수익을 올렸다. 펀드는 컨소시엄에 36억 5,000만 달러의 부채를 변제했다. 그리고 2000년 초에 청산되었다.
그러므로 LTCM의 문제는 단지 유동성의 부족만이 아니었다. 아마도 펀드의 전체 전략이 틀렸기 때문일 것이고, 1998년 당시 신용에 대한 세계의(그리고 LTCM의) 시각이 다소 지나치게 낙관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련의 증거들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시장에 대한 LTCM의 잘못된 판단, 그 잘못된 판단의 영향이 9월에 복합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다른 트레이더들이 LTCM의 임박한 파산에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래를 중단함으로써 ‘유동성’이 사라지게 된 9월에 말이다.
앨런 그린스펀은 연준이 LTCM의 구제를 지휘한 일로 인해 미래에 도박을 거는 사람들이 더 생길 수도 있고 재앙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졌을 수도 있음을 솔직히 시인했다. 그는 이렇게 발언했다. “어떤 측면에서 보든 간에 연방준비이사회의 개입으로 확실히 약간의 모럴 해저드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준의 의장은 그러한 부정적인 영향보다 “LTCM이 파산했을 경우 일어났을 심각한 시장 가격의 왜곡에 따른 위험이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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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LTCM의 사례가 증명한 것이 있다면, 전통적인 유가증권에서는 아주 잘 운용되던 공시 제도가 파생상품 계약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서, 투자가들은 대차대조표상의 리스크는 잘 알고 있었지만 파생상품의 리스크에 대해서는 별로 감을 잡지 못했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신고 기준들이(그린스펀과 은행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구멍이 있다. 파생상품 시장의 성장 추세에 따라 그러한 약점은 계속 투자가들을 따라다닐 것이다.
백악관은 우수한 인력들로 ‘대통력 직속 금융시장대책위’ 구성하여 (연준과 함께) LTCM의 몰락을 연구하도록 했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LTCM의 사례를 통해 제기된 공공 정책의 핵심은 과도한 차입 투기를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더욱이 보고서에서는 파생상품의 증가 추세를 감안하여 “대차대조표상의 차입거래 그 자체는 리스크 평가의 적정척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대책 마련에 관해서는 별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헤지펀드의 공개를 더욱 강화하고, 은행들이 더 나은 리스크 및 여신 관리 정책을 펴야하며, 규제 기준을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고 제시하기는 했다. 그러나 1999년 4월에 조심스럽게 작성된 이 보고서는 LTCM에 대한 관심을 급격히 잃어가던 의회에서 행동을 끌어내는 불길을 지피지 못했다.
헤지펀드의 유행 역시 한물 간 것이 되었다.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LTCM의 위기는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위기를 만든 장본인은 주머니가 두둑해짐에 따라 방만하게 일을 벌린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들이었다. 구제 당시에 은행들은 LTCM의 트레이드마크인 비밀주의 희생자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입장은 여러 은행가들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면서 더욱 강조되었다(예를 들어, 코만스키는 연방준비은행에서 나와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의 포지션을 보고 있자니 무릎이 다 떨리더군”이라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주장은 공허해져 갔다. 적어도 각 은행들은 LTCM에 대한 각자의 노출을 거래별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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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M은 예외적일 정도로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관대한 신용 조건을 제시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방들은 LTCM으로부터 자신들의 자본과 대단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가증권 및 파생상품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습니다. 그러나 LTCM의 리스크 실태를 제대로 이해한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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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LTCM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펀드로서, 금융경제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두 원칙을 이용하여 시장에 고삐를 채우려는 일대 실험이었다. 미래의 리스크를 과거의 가격과 변동성을 근거로 추측할 수 있다는 믿음이 거의 모든 투자 은행과 트레이딩 부서에 팽배해 있었다. 바로 이것이 LTCM의 기본적인 실수였고, 그들의 엄청난 손실은 현대 금융학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풀기 어려운 결점을 폭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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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소감.
매물이 가격이 떨어지면 구매한다. 언젠가는 가격이 다시 올라 그 때 팔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가격이 떨어지다 못해 기업이나 국가가 도산해 버리면 가격이 다시 오르는 날은 다시 만날 수 없다.
자신이 감당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절망처럼, 충분히 샌드백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자신의 맷집처럼, 그러나 감당 못하는 깊은 절망을 겪게되면 샌드백역할을 하던 자신의 맷집이 무너져 샌드백이 터져 모래가 바닥에 다 흩어지는 사태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