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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에세이<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읽고 정리 발췌하면서.

by 까르멘 2016. 8. 18.


독후감 대신 눈에 띄는 구절들을 발췌하는 것이 

원작의 느낌을 잘 전달할 것만같고 

본문전체를 읽어보고싶은 생각도 하게 되어 

책도 직접 찾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 작업을 해봅니다.


블로그 <숨어있기 좋은 방>에서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이 "독후감 대신 인상깊은 구절 발췌정리하기" 작업이 

한동안 지속되다 보면 

이 블로그에 멋진 서재가 하나 마련되어지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에는 백영옥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입니다.

작가의 경험이나 추억을 바탕으로 에세이를 풀어나가서 

보다 따뜻하게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책으로 기억남습니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하지만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앤이 한 말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앤의 말을 듣기만 했을 때와 노트에 적었을 때의 차이는 컸다. 그 차이만큼이 내겐 기적의 크기다. 나는 한 번 더 실망하더라도 오래 꿈꿔왔던 것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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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진주알들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아요.


*어머, 아주머니, 정말로 모르세요? 한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에는 틀림없이 한계가 있을 거예요. 아,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여요.


*그렇지만 마릴라 아주머니, 이토록 흥미진진한 세상에서 슬픔에 오래 잠겨 있기란 힘든 일이지요, 그렇죠?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실망도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 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나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내 속엔 여러 가지 앤이 들어 있나 봐요. 난 왜 이렇게 골치 아픈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가끔은 들기도 해요. 내가 한결같은 앤이라면 훨씬 더 편하겠지만 재미는 절반밖에 안 될 거예요.


*무언가를 즐겁게 기다리는 것에 즐거움의 절반이 있는 거예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기다리는 기쁨이란 건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요.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프롤로그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런 나의 앤에게


7페이지


10년 전 봄, 침대에 누워 천장의 무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지쳐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실패했고, 소설가가 되겠다는 오랜 꿈에서 멀어졌고, 결국 회사에 사표를 냈다. 버튼 하나 누를 힘이 없었지만, <빨강머리 앤> 50부작 애니메이션을 봤다. 


............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실망도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 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나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수없이 앤을 봤다. 하지만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앤이 한 말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앤이 한 말을 ‘듣기만 했을 때’와 그녀에게 들은 말을 ‘노트에 적었을 때’의 차이는 컸다. 그 차이만큼이 내겐 기적의 크기다. 나는 다시 한 번 실망하더라도 오래 꿈꿔왔던 것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나는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어쩌면 이것은 더 이상 기적을 믿지 않는 시대에 일어난 지극히 개인적인 기적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해 가을,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이 책을 나의 빨강머리 앤에게 바친다.


20페이지


“앞으로 알아낼 것이 많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만약 이것저것 다 알고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럼 상상할 일도 없잖아요!”


우연을 기다리는 힘


24페이지


“아저씨

이제 왜 제가 완전하게 행복할 수 없는지 아셨겠죠?


전 주근깨나 비쩍 마른 건 신경쓰지 않아요.

그런 건 상상으로 아름답게 꾸미면 되니까요.

하지만 빨강머리는 어쩔 수가 없어요.

역시 빨강머리는 없어지지 않는 걸요.

정말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아요.

평생을 붙어 다닐 슬픔일 거예요!“


머리카락이 초록색이 되고 나서야, 앤은 자신의 빨강머리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하는 힘 아닐까. 시간은 느리지만 결국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나무를 자라게 한다. 나는 그것이 시간이 하는 일이라 믿는다.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걍퍅한 마음을 조금씩 너그럽고 상냥하게 키운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거울을 보며 어느 날 당신도 이렇게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아! 정말 좋다! 까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이 정도도,

나쁘지 않아.......


42페이지


“전요.

뭔가를 즐겁게 기다리는 것에

그 즐거움의 절반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즐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즐거움을 기다리는 동안의 기쁨이란

틀림없이 나만의 것이니까요.“


마음을 물어보는 시간


52페이지


“야망에는 결코 끝이 없는 것 같아.

바로 그게 야망의 제일 좋은 점이지.

하나의 목표를 이루자마자

또 다른 목표가 더 높은 곳에서 반짝이고 있잖아.

야망은 값어치가 있지만 손에 넣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야.

자기부정, 불안, 실망이라는 

그 나름대로의 장애물을 거쳐 싸워 나가야 하는 것이니까.“


나는 삶을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데 이렇게나 되는 일이 없어도 될까 싶었다. 생각해보니 나의 20대는 그런 시간이었다. 싹이 나든 나지 않든 무조건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고, 또 뿌리며 싹이 나오길 기다리던 막막한 시간들.


고독을 좋아한다는 거짓말


84페이지


“전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 속에 살고 있는 예쁜 여자아이라고 상상하고 했던 거예요.

전 그 아이에게 캐시 모리스라고 이름을 붙이고

우린 아주 사이좋게 지냈어요.

특히 일요일 같을 때는 몇 시간이고 캐시와 얘길 했어요.

전 있는 그대로 모든 걸 캐시에게 털어놨어요.

캐시가 있어서 여간 다행인게 아니었어요.“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하는 능력과 그것을 지속시키는 능력은 사실 전혀 별개의 능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든 우정이든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떠날 필요가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어쩌면 그것은 진짜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가장한 욕망, 우정으로 포장된 필요가 아니라 진짜 감정 말이다. 나는 종종 그런 관계를 꿈꾼다. 모든 곳에 있고, 어디에도 없는 관계.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관계를.


고백의 여왕


90페이지


“만약 누군가 야단을 쳐야 한다면,

절 야단쳐 주세요.

전 야단을 많이 맞았기 때문에

다이애나보다 훨씬 더 잘 견딜 수 있다고요!“


고백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것이 알려지면 겪게 될 고난의 크기에 비례해 두려움이 커지기 때문이다. 앤은 고백과 함께 성장한 캐릭터다. 그녀가 저지른 실수의 목록이 늘어날 때마다 고백의 리스트도 늘어났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점점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진다면


100페이지


앤에게 ‘매튜’아저씨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처음 만든 초코 케이크의 점수를 묻는 앤의 눈동자가 반짝거릴 때, 매튜는 ‘백 점’이라고 말하는 대신 앤에게 ‘케이크를 조금 더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희귀한지, 어느만큼 눈물나게 소중한지 앤은 몰랐겠지만, 나는 이제 너무 잘 안다. 그가 처음 만든 내 초콜릿을 본 날 내게 했던 말 역시 그래서,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초콜릿 모양이 영 엉망인게......맛없게 생겼다. 쯧쯧. 그때 너 요리 배우로 유학 안 가길 정말 잘했어.”


그리고 그의 무심한 듯 다정한 마지막 말도 기억한다.


“맛있네. 하나 더 줄래? 세 개는 더 먹어야겠어!”


내 마음의 안전지대


118페이지


살면서 간절히 원하던 ‘그것’을 선물 받는 경험은 흔치 않다. 앤은 리본이 달린 퍼프 소매 원피스를 선물 받고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감격한다. 선물이 분에 넘치는 사치품이든,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든, 중요한 건 나를 생각해주는 누군가의 관심을 아는 일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존재한다는 건 모진 세상을 살면서 쉬어갈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만든다는 의미일 테니까.


사진에는 없는 사람, 아빠


135페이지


<윤미네 집>을 펼쳐보다가 나는 매튜 아저씨를 떠올렸다. 지금 시대였다면, 매튜 역시 앤의 성장을 사진으로 기록했을 거다. 앤이 처음 초록지붕 집에 오고, 앤이 자라나 시를 낭송하고, 마릴라를 도와 빵을 굽고, 섬 전체에서 1등을 하고, 대학을 가고, 사랑에 빠진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자신의 눈 속에 기록하고 싶었을 것이다. 


훗날 앤은 그 사진을 보며 매튜를 추억하고,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토록 많은 사진들 속에 정작 매튜 자신의 얼굴은 없다는 걸. 그녀는 어느 가을밤의 나처럼 문득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자신이 평생 찍은 아이들의 사진 속에, 정작 자신은 등장하지 못하는 사람.


사람은 언제 위로받는가


156페이지


“인간이 언제 위로받는지 알아? 쟤도 나처럼 힘들구나! 바로 비극의 보편성을 느낄 때야.”


긴 시간이 흘러 문학상을 받고 소설가가 되었을 때, 그러므로 내 당선소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낙선기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신문에서 떨어졌고, 어느 문학상에서 떨어졌고, 그것이 몇 년도였고, 다시 도전한 신문에서 또 떨어졌고, 다시 떨어진 그곳에 세 번 더 넣었지만 또 다시 떨어졌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H의 말이 맞다. 누군가의 성공담에는 교훈이 있지만 위안은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실패에서 위로받는다. 내가 그걸 알게 된 건 서른세 살이 되던 가을이었다. 소설가를 꿈꾸며 매일 일기를 쓴 아홉 살 이후 24년의 시간. 소설을 투고하기 시작한지 정확히 13년 되던 해였다.


내가 하고 있는 일


183페이지


“아주머니, 잡담과 글짓기는 전혀 달라요.

글은 생각을 잘 정리해야만 쓸 수 있어요.

게다가 이번 주제로는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탈이거든요.

전 인물도 그렇고, 마음씨도 좋지 않으니까

설령 목사님이라 해도 아내로 맞아줄지 어쩔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전 일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앤이 내게 물었어도 아마 같은 말을 했을 거다. 이제 나는 ‘너의 꿈을 직업으로 이뤄라!’ 같은 말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직업은 적어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맞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본래의 직업은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먼 셈인 것이다. 나는 버리고 떠나는 삶은 존중하지만, 이제는 버티고 견디는 삶을 더 존경한다.


한때의 빛나는 재능이 훗날의 아픈 족쇄가 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자신의 꿈을 직업적인 성취로 이루지 못했다고, 꿈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실패자란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으면 한다. 믿거나 말거나 나로 말하면,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꿈을 자기 직업으로 갖게 된 사람들의 지독한 불행에 대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꿈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이 세상에 ‘삶’보다 강한 ‘꿈’은 없다. 인간은 꿈을 이룰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꿈꿀 수 있을 때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약이 아니다


188페이지


“아주머니 실컷 울게 해주세요.

우는 게 그 아픔보다는 덜 괴로워요.

얼마 동안 제방에 있어 주세요.

저 좀 안아 주세요.“


비는 그칠 것이다. 눈은 잦아들고, 바람은 지나갈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별조차, 좌표를 바꾸며 끊임없이 변한다. 시간은 많은 것들을 바꾼다. 하지만 지금의 앤에게 슬픔을 참으라고 말하지 않겠다. 아직 슬프다면 더 울어야 한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 시간이 되면, 얼마간 담담해진 얼굴로 피어 있는 꽃도 보고, 반짝이는 달도 별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상처가 회복된다고 해도, 인간에겐 흔적이 남는다. 우리는 그것을 흉터라 말한다. 흉터를 안은 채,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 견디거나 버티는 것, 어쩌면 삶은 그런 것에 보다 가까울지 모른다.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를 믿는 건 어쩜 어른이 되어간다는 말일는지도......벚꽃이 바람에 비처럼 흩날린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는 4월이다.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


224페이지


다시 영화 <봄날은 간다> 이야기로 돌아가면, 은수처럼 힘든 여자를 만났기 때문에 상우 역시 처음으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감정의 혹독함을 깨닫는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질문해보았을 것이다. 삶의 관문 같은 ‘그녀라는 세계’를 통과해가며 스스로의 한계와 가능성 모두를 체감했을 것이다. 은수 같은 사람을 사랑해보았기 때문에, 그는 앞으로 누군가를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거다. 내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좋아하는 건 그 때문이다.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258페이지


앤과 길버트가 서로의 마음을 알기까지 걸린 시간이 5년이라고 해서 , 그것이 답답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쩍 성장한 두 사람이 길 한가운데 서서 5년 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여자아이와 훤칠한 갈색머리 남자아이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풍경 속의 석양은 더할 나위 없이 서정적이었다. 초록지붕 집까지 나란히 서서 걸어가는 그들을 오래오래 바라봤다. 문득 좋아하는 누군가를 마음으로 기다리는 일은 어쩌면 인생을 걸고 해볼 수도 있는 멋진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른의 시간


283페이지


나 역시 잡지사에 계속 있었으면 운 좋게 승진해 편집장이 됐다면, 후배들깨나 괴롭히는 상사가 됐을지도 모른다. 좋게 말해 전문성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결벽증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믿고 맡겨야 할 일에 시시콜콜 참견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좋은 관리자나 좋은 부모의 특징은 역설적이게도 ‘덜 참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디테일에 집착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조화나 균형을 바라보면서, 꼭 나서야 할 곳에서만 나서는 중용의 묘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잘못 갈 길이 빤히 보이는데도 눌러 참으며 다시 되돌아오길 기다려주는 게 보통 일인가. 하지만 사람은 실수에서 배우고, 그 실수가 혹독할수록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변한다


288페이지


나는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 사람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변하는 거구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변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말보단, ‘변해서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평생 밥만 먹던 할머니가 죽기 몇 달 전 빵을 맛보면서 ‘아! 빵이 참 맛있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영화<해피해피 브레드>)이 그래서 나는 참 좋았다.


물론 낯선 시도들 때문에 자신에게 ‘고양이 털 알라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거나, 아무리 공부해도 자신이 외국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혼자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다. 도전하고 시도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실패가 많은 삶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이가 들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풍성한 삶이 좋은 삶이 아닐까.


에필로그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326페이지

“이 전환점을 돌면 어떤 것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난 그 뒤엔 가장 좋은 것이 있다고 믿고 싶어요!”


사람들은 과거는 절대 바꿀 수 없다고,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과거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이젠 안다. 정확히 말해 과거의 ‘의미’는 내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변한다. 나는 과거가 뒤바뀐 사람들을 줄곧 관찰해왔다. 성취가 실패로, 상처가 성숙으로, 행운이 불행으로, 분노가 기쁨으로 말이다. 내가 SNS의 자기 소개란에 곧잘 작가란 말 대신 ‘상처 수집가’, ‘눈빛 탐험가’라고 쓰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