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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라디오 씨리즈를 읽고 발췌 정리하면서

by 까르멘 2016. 9. 29.



독후감 대신 눈에 띄는 구절들을 발췌하는 것이 

원작의 느낌을 잘 전달할 것만같고 

본문전체를 읽어보고싶은 생각도 하게 되어 

책도 직접 찾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 작업을 해봅니다.


블로그 <숨어있기 좋은 방>에서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이 "독후감 대신 인상깊은 구절 발췌정리하기" 작업이 

한동안 지속되다 보면 

이 블로그에 멋진 서재가 하나 마련되어지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연작 에세이 모음집=<무라카미 라디오>1,2,3권 중 일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무라카미라디오1권=저녁무렵에 면도하기

무라카미라디오2권=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무라카미라디오3권=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중 1권에서 총 2편발췌했습니다.


저녁무렵에 면도하기


무라카미 하루키


44페이지

뛰기 전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국에 이블 크니블이라는 이름의 유명한 전문 스턴트맨이 있다. 이 사람은 평생 다양한 종류의 엉뚱한 모험에 도전했는데, 그중에서도 모터사이클을 타고 그랜드캐니언을 뛰어넘는 황당한 시도가 유명하다. 도움닫기를 하기 위해 활주 사면을 만든 다음 그곳을 전속력으로 달려올라가 그대로 건너편 절벽까지 쓩 하고 호를 그리며 날았다. 이런 것은 보통(정상적인) 사람은 여간해서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폭이 좁은 곳이라 해도 그랜드캐니언은 정말 넓다. 이블 크니블 씨가 이 위업을 달성한 뒤에 한 말이 생각난다.


“점프하는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어려움은 착지를 하려는 순간부터 시작되죠.”


과연 그렇군, 듣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기세 좋게 점프만 하는 것이라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누구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착지를 잘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터사이클로 그랜드캐니언을 실제로 뛰어넘은 사람에게 직접 들으니 ‘음, 철학이로군’하고 마음 깊이 이해했다.


한편 정반대의 이야기가 될 텐데, 오에 겐자부로 씨의 옛날 작품 중에 <보기 전에 뛰어라>는 책이 있다. 젊은 시절 그 제목을 보았을 때,‘그래, 보기 전에 뛰어야 하는구나’하고 희한하게 몹시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이것도 역시 하나의 철학일지 모른다. 1970년 전후의 어렵던 시대에는 그 ‘보기 전에 뛰어라’는 말은 하나의 유행어처럼 쓰이기도 했다. 이블 크니블 씨와 오에 겐자부로 씨가 무릎을 맞대고 점프에 대해서 대담을 나눈다면 정말 재미있을 텐데 아마 하지 않겠지.


나도 살면서 몇 가지 모험을 했던 만큼 이제와 새삼 돌아보면, ‘여기까지 잘도 살아서 왔군’하고 스스로 감탄하게 된다. 물론 어느 것도 그랜드캐니언을 모터사이클로 건너뛰는 것 같은 화려한 점프는 아니었지만, 당시의 내게는 꽤 엄청난 모험이었다. 착지를 잘 생각한 후에 뛴 적도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고-생각할 만큼 머리가 따라주지 않았던 탓도 있다-‘보기 전에’ 뛰어버린 적도 있었다. 상처를 입은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었던 덕분에, 세간에서 ‘작가’라 불리며 등 따습고 배부르게 지내면서 변변찮게나마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태평하게 보내고 있다.


다시 젊어져서 인생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하겠습니까?하는 질문을 받는다면,“아뇨, 됐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 무서운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168페이지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특정 상황에 꼭 머리에 떠오르는 노래가 잇다. 이를테면 하늘이 아름다운 밤에 별을 올려다보면 <사랑하는 이들처럼 Like Someone in Love>이라는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린다 재즈 쪽에서는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인데, 아시는지?


요즘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혼자 물끄러미 별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기타 선율에 빠져 있기도 해,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사랑에 빠져 있으면 그런 일이 있다. 의식이 어딘지 기분 좋은 영역을 나비처럼 너울너울 날아, 지금 무얼 하는지 잊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긴 시간이 흐른 것을 깨닫는다.


생각건대 사랑을 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열여섯에서 스물하나 정도가 아닐까. 물론 개인차가 있으니 쉽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아래라면 뭔가 어린애 같아서 우스울 것 같고, 반대로 이십대가 되면 현실적 굴레가 작동할 것 같고. 더욱 나이가 많아지면 쓸데없는 잔꾀가 늘어서 또 그렇고 말이다.


그러나 십대 후반 정도의 소년소녀의 연애는 적당히 바람 빠진 느낌이 있다. 아직 깊은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옥신각신하는 일도 있겠지만, 그만큼 모든 일이 신선하고 감동은 가득할 것이다. 물론 그런 나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영원히 잃어버린 뒤겠지만, 그러나 기억만큼은 신선하게 머물러 그것이 우리의 남은(애처로운 일이 많은) 인생을 꽤 유효하게 덮혀줄 것이다.


줄곧 소설을 써왔지만 글쓸 때 역시 그런 감정의 기억이란 몹시 소중하다.


설령 나이를 먹어도 그런 풋풋한 원풍경을 가슴속에 갖고 있는 사람은 몸속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다지 춥지 않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귀중한 연료를 모아두는 차원에서라도 젊을 때 열심히 연애하는 편이 좋다. 돈도 소중하고 일도 소중하지만, 진심으로 별을 바라보거나 기타 선율에 미친 듯이 끌리는 시기란 인생에서 아주 잠깐밖에 없으며 그것은 정말 귀한 경험이다. 방심해서 가스 잠그는 것을 잊거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도 가끔이야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