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서의 휴가-2>미완되어 보이지만 급 완결로.
책을 왜 봐야할까 영화나 드라마는 왜 봐야할까 이런 장르는 왜 계속 파야만 하는걸까?에 대한 갈등과 번민 방황, 과연 유의미한 일과일까에 대한 의구심을 사르르 녹이고 채연은 연서에게 그런 것은 당연한 일상인거야라는 포근함을 제공해준다. 그런 걸 굳이 고민 할 필요는 없는거야 앞으로 걸어가는 일이야 길이 갈라져서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엔 도착지는 정해져 있을 거야. 라는 식의 인식으로 연서는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런 방황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심리적 안정을 얻게 해주었다.
내가 하는 무의미해보일수도 있는 것들의 일과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역할을 일부러 하고자 해서 언어로 다독인 것은 아니지만 채연의 문화적 아이콘에대한 삶의 자세는 따뜻한 목욕물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안심을 주게 되었다. 흔들리지 않고 찬찬히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뜬구름 잡기를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의 발걸음으로 생각해도 되게 만드는 그녀의 존재는 연서에게는 큰 기둥뿌리였다. 햇살이었고 바람이었다. 때로는 나무의 수분섭취를 위한 빗물이 되기도 하였다.
길들임의 비법은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바람과 햇살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데에는 채찍과도 같은 차가운 바람보다는 따뜻한 햇살 더운 햇살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데 성공하는 것처럼. 그래서 채연이 연서에게 툭툭 건네는 현실기반의 고민들 밥벌이라든가를 위한 것들의 고민이나 진로에 대한 조언을 자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뭄에 내리는 고마운 빗줄기처럼 건네는 포근한 말 몇마디는 그에게는 나무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그리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되어가곤 했다.
학교교사가 되어보는 것은 어떤가 공무원이 되어보는 건 어떤가 글을 써보는 것은 어떤가 문화생활을 놓치지 않는 것은 어떠한가 정도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밖에 같이 지내온 긴 시간동안 제시한 것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잔소리와 같았던 말들보다 설득력있고 절대적인 조언으로 들렸다.
채연은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하였지만 글은 거의 안쓰는 그런 유저다. 나역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긴 하지만 어쩌다 게시글을 올리는 정도다. 둘다 팔로워나 친구등록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채연과 연서는 흔히들 말하는 페이스북 유저들이 대중적이고 다수의 위치에 있고 트위터는 비교적 소수이고 친목질을 확실히 덜하는 것처럼 분석되는 짤방이 있는 것처럼, 둘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트위터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페이스북보다 트위터에서는 이런 사람도 세상엔 존재한다는 자기증명처럼 보이는 아무말을 해도 사람들은 “어 그런가보다.훔.”하고 넘어가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페이스북처럼 좋아요 버튼이 얼마나 눌리는가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트위터적인 삶, 페이스북이 보살펴주는 주인들을 위해 아양을 떠는 개과의 사람들의 집합이라면 트위터는 도도하게 굴어도 되는 고양이과의 사람들의 집합인 것처럼. 수줍게 서로에게 발을 내밀지만 발을 내밀어도 될까?하고 고민도 하지만 결국엔 아무렴 어때로 쿨하게 넘어가기도 하는 트위터적인 일상이라고 하면 비유가 맞을까나?
그래서일까? 채연은 생선과 계란과 우유까지는 먹지만 육고기는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이다. 둘이 같이 있을 때 밥을 먹으러 갈때는 주 메뉴는 김치찌개와 국수, 비빔밥, 생선구이, 샐러드 등으로 그녀에게 맞추어지곤 해서 연서는 가끔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연서는 이렇게 먹는 것도 건강엔 좋을꺼야라고 수긍하기도 하는 것이다. 식사메뉴는 일상의 삶에서 중요한 대목이긴 하지만 연서는 기꺼이 양보한다. 사실 연서가 좋아하는 삼겹살이나 목살구이 햄 만두 갈비탕 치킨 햄버거는 자주먹으면 건강엔 좋지않다고 트위터에서도 유저들이 많이 얘기하는 것들이기도 하고.
<연서의 휴가...미완으로 남음 하지만 급마무리를 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