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에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는 것
어쩌면 그것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눈을 막연히 바라보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또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기쁨을 누리던 그 시절. 한편으론 각박하기만 했던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도피하여 상처만 남는지도 모르는채 새롭게 접하는 사람들을 신뢰하고 생각이나 감상을 공유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던 그 시절.
그 시절의 그것이 행복이란 것으로 정의되는지도 모르는채 알을 깨고 나온 오리가 짹짹거리며 어미를 따르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하지만 생채기가 생겨도 금방 아물곤 하는 것. 새장속의 새처럼 갇힌 공간에서 노래하는 운명을 저버리고 야생과 인간의 보호사이에 세상을 처음으로 인식해나가기 시작하는 그런 것.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그당시에는 그것이 성장통인지도 모르는채. 학습과 성장이 버겁고 괴로웠으나 그것이 괴로운 것인지조차 버거운 일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던 삐약삐약 혹은 짹짹거리는 아직 꽥꽥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새끼 오리 시절.
처음엔 주변 인간관계나 생활패턴 등에서 큰 변화는 없었고, 잘 때 꾸는 꿈에서 감당하기 어려워 깨고 나면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의 벅찬 꿈 속의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헉헉대던 그 꿈들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그 꿈들은 소위 말하는 개꿈들로 흥미진진하고 긴박한 영화 몇편을 보는 듯한 기분이라 깨고나면 <흥미진진했어>라는 마음과 함께 몸은 많이 피로하고 지쳤었다. 정신분석학 개론서를 봐도 내가 꾸던 꿈들은 분류되기 어려웠고 유형화되지 못해 그것들에 대한 설명이 어려웠다. 심지어 꿈 해몽 책에서조차 설명될만한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흥미진진하지만 개꿈이라고 밖에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업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가한 압박으로 많은 것을 포기했다. 보고싶은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 감수성이 한창이던 시절 그 감동의 여운으로 학업에 지장을 줄까봐 자제하였고 다만 독서는 언어영역 수련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독서는 하지만 그것도 상념에 젖을 때가 많아 자제하였다. 그 외 생활도 금욕적이었다.
하지만 꿈을 벅찰정도로 꾸기 시작하면서, 혹은 절제하기로 한 인간관계 속에서 감동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의 소통과 교감에 대한 욕구가 학업에 대한 열망과 그를 위한 금욕을 향한 열망을 넘어서는 시점이 나를 찾아왔고, 그 시기는 고3시절로 이율배반적이던 나의 문화생활과 인간관계라는 것에서 비롯되는 사랑과 학업에 대한 그리고 금욕에 대한 열망은 격정적으로 드렁칡이 얽히듯 소용돌이쳤다. 나의 두뇌회로와 감성회로는 충분히 다방면으로 폭주하는 중이었고 난 퓨즈가 녹아버리는 것을 직감하였지만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나의 문화와 인간에 대한 욕망과 금욕과 학업에 대한 욕망의 모순은 나에게 가까운 시일 내에 둘 중 하나의 세계를 택하도록 그리고 돌진하도록 종용하였고, 신흥강자인 전자의 것들이 내안의 갈등에서 승리하리라는 것은 혼돈속의 나로서도 직감할 수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나 자신은 구원을 원했고 나 자신의 욕망의 승자는 그 욕망 덩어리를 카타르시스해서 표현할만한 도구를 어서 갖추기를 다그쳤다. 표현되거나 카타르시스되지 못하면 나 자신 안에 검붉은 피가 고여 나를 썩게 만들것이라고 적색신호를 보내었다. 수영도 못하던 나 자신의 허우적거림의 결과 잡게 된 조각난 나무판자들이 나에겐 짧은 일기와도 같은 글과 사진들이었다. 그게 돈도 안되고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주변 모든 사람이 걱정하던 예술의 세계에 발을 한 걸음 들이게 된 이유이다.
기존에 속해있던 금욕적 엘리트로서의 삶에 진저리를 치던 당시의 나는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벅차기도 했지만 답답하고 숨도 막히는 바닷물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수면위의 산소를 마시고 싶어 허우적 거릴 때 붙잡은 것은, 보잘 것 없어 보일 수도 있던 예술이라고 하는 도구들로 그것들을 붙잡고 망망대해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해 나를 숨쉬게 하였다.
(사진은 강릉 안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