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에 관한 기억을 소환하면서...<안느마리>편.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나던 그리고 교류하던 시기가 있었다. 다시 그때처럼 해보라고 하라면 체력과 정신력과 열정의 고갈을 일삼던 나 자신에게 <그러한 일은 한번으로 족해.>라고 말하고 사양하라고 옆구리를 꼬집으며 강력하게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절, 에너지의 집중적인 사용의 시기를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자의나 타의로 어쩔 수 없이 보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한 시기들 중 시기상으로 앞선 시기인 2000년에 알게 된 <안느마리>에 대하여 써볼까 한다. 그녀는 주류매체는 아니지만 소설가로서 등단을 하였고 소설집이 잘 팔리지는 않았지만 책이 2000년 그 당시에 출간된 신인 작가였다. 2017년 현재까지 여러권의 소설집이 출간되었으나 유명하지는 않고 다만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서점 싸이트에서 검색하면 검색결과가 나오니 실명은 쓰지 않기로 한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내가 대학 재수시절 삭막한 생활을 하던 시절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한 <세헤라자데>라는 곳이었다.(지금은 없어졌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마광수교수님의 비공식 팬클럽 까페로 다음까페가 한창 인기를 얻고 활성화가 되던 시절에 우연하게 그곳에 가입하였다. 마침 거기는 많은 젊은 문청들과 예술인들이 모여 들었던 곳으로 나는 이제 막 문학과 예술에 입문하려던 때였다. 게시판에선 그곳 사람들이 마광수교수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다양한 문화적인 논의나 짧은 글들을 게시하였고 리플이 달리며 채팅방도 수시로 열리고 정모나 벙개도 자주있었다.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던 만큼 다사다난하였던 곳이었다. 나의 정서적 자양분을 그곳에서 많이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나는 외로웠고 하고싶은 이야기를 세상에 할 창구 또한 없었다. 그래서 <세헤라자데>에 가입하여 일기인지 시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을 가끔 게시판에 올리고 채팅방에도 가끔 참여하고 독특한 독후감을 짧은 분량으로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채팅방에서 알게된 안느마리가 나에게 게시글이 인상적이라고 말을 건네왔다. 내가 쓴 글이 좋은 평을 얻은 것은 그것도 소설가에게, 그것은 내 스무살 일생 최초의 경험이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을 것 같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내밥에 약을 타서 죽이려 한다. 은수저로 밥을 한번 눌러보고 먹는 버릇이 생겼다.> 그 후 안느마리는 자신의 소설이 출간되기 전 미리 이메일로 원고를 보내주었고, 나는 프린터로 출력하여 읽고 감상문을 보내주었다. 소설이 잘팔리면 노트북을 사주겠다는 공수표를 날리기도 하였다. 출간은 무사히 하여 신문에 문학기자가 쓴 리뷰가 실리기도 하였지만, 아쉽게도 잘 팔리는 일은 없었고 고로 나에게 노트북이 택배로 도착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나에겐 중요하지는 않았다. 정서적이고 문화적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서 리스트를 제공해주었고 이 책을 읽고 나면 한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근을 주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잔뜩 어려운 책만 추천을 해주어 힘들긴 했지만 완독을 하거나 읽으려고 시도한 책은 많았던 것 같다.
내친구가 글을 너무 잘 써서 질투가 나고 열등감이 생긴다고 어렵게 마음을 털어놓으니 안느마리도 그 친구의 싸이트에 가서 글을 보며 너가 더 낫다고 위로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날 보고 짧은 글 말고 소설을 써보라고 자주 권유하였다.
안느마리에게 여러 면모가 있었지만 난 그 중에서도 안느마리가 쓴 소설들이 더 마음에 들어 가까워 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내가 처했던 경험들과 복잡했던 사정들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언어로 표현조차도 못할 때 안느마리는 장문의 글들로 소설로 안느마리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였고 그 세계가 나와 유사한 점이 많았기에 나는 묘한 포근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와 같은 교집합이 있었기에 안느마리의 소설의 감상문을 더 잘 쓸 수 있었고 안느마리는 자신의 소설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으로 나를 꼽았었다. 그리고 채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며 나이는 한참 어린 내가 차분히 들어주었던 적이 많았는데 어떤 때는 날보고 정신과의사와 같다라는 칭찬도 해준 것 같다.
어떤 때는 안느마리와 채팅을 하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같다고 채팅스타일이 다르다고 내가 맞는지 확인해보던 때도 있었다. 소설가라 문체에 민감하여 그런 것들을 잘 발견해주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내 안의 다른 문체라......
택배로 책을 보내주거나 이메일로 원고를 보내주거나 가끔 통화를 하거나 채팅을 하거나 할 때도 있었으나 실제로 안느마리를 만나본 적은 없다, 사진은 본 적은 있는데 굉장한 미인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고 귀여운 인상이었다고 기억한다.
나에겐 스승이자 멘토로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 사람으로 기억한다. 고마운 사람이다.
(사진은 오죽헌에서 신사임당의 그림들을 영상으로 보여주던 것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