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에 관한 기억을 소환하면서...<언니네이발관>편.
누구를 기억해내어 글을 쓸까 고민만 가득히 하다가 지금은 이런 기억을 소환해내는 작업이 쉬운 일이 절대 아님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실제로 만나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먹거나 통화를 하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한 사람은 아닌 어떤 연예인을 떠올려보고 싶다. 물론 나는 그 사람의 팬이다. 안느마리나 씨에나님에 대한 글을 쓴 바와 비슷한 맥락으로 나의 덕질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소환하고자 한다.
2002년경이었을 것이다. 고전적 외국의 락밴드나 국내의 인디밴드들에 대한 판타지가 있던 나는 누구를 덕질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국내 문학인들의 글 속에 소개되어 나오는 외국밴드들을 벅스뮤직에서(당시에는 음원싸이트가 무료였었다.) 듣거나 테입이나 씨디를 구매하여 듣거나 했다.
엑스재팬, 레드제플린, 지미헨드릭스, 아무로나미에, 오지오스본, 스키드로우, 레이지어겐스트더머신 등이 있을 것이다. 자주 듣던 국내의 밴드로는 당시 인지도가 있었던 그룹으로 롤러코스터, 자우림,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있었는데 확실히 외국밴드들보다 한국어가사로 들을 수 있어 듣기 더 편했던 것만 같다. 라디오를 통해 이들의 노래를 접했고 나중에 씨디나 테입 혹은 벅스뮤직을 통해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밴드도 반복해서 듣다보면 질리는 법. 게다가 나의 감성은 2002년에는 한참 감성이 황폐해지고 뻣뻣한 나무토막같은 시기였다.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나의 감성을 구원해줄 무언가를 기다리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날 심야라디오에서 <언니네이발관>의 ‘2002년의 시간들’이 나왔다. 밴드의 이름과 곡명을 노래를 틀어주기 전에 안내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는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게 뭔지 검색하거나 알아볼 길이 없었다.
그날부터 난 라디오를 잔뜩 촉을 세우며 듣기 시작했다. 수동적이고 의욕도 별로 없던 시기의 나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세로 만들어준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였다. 라디오의 음질이 안좋기도 했지만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는 남자보컬의 중성적인 보이스로 인해서인지 집중해야만 가사를 파악해 낼 수가 있었기에 나의 음악청취에 대한 의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주게 되기도 하였다.
인디밴드라고 하면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처럼 시끌벅적하고 사회저항적이고 강렬한 사운드만을 떠올렸는데 언니네이발관으로 인해 그 인식의 전환이 있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지만 상투적인 사랑노래는 아니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언니네이발관이 마니아층의 인기를 넘어 대중적 인기도 조금 얻게 될 때에 평론가들이 하는 말로 언니네이발관이 모던락의 시초라고 음악사에 남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난 그 당시에는 그러한 것은 잘 모르고 막연히 중독성있는 밴드의 연주와 목소리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는 언니네이발관의 노래 앞에 소개되는 밴드소개와 곡 이름 안내를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노력하다 그 밴드의 이름이 언니네이발관이고 보컬은 이석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흥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난 당장 부족한 용돈을 모아 테입이 아니라 씨디를 구해서 반복해서 듣기 시작했다. ‘2002년의 시간들’은 3집에 수록된 곡이라는 것 또한 알게되었다. 당시에는 1,2집은 절판??이 되어 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벅스뮤직에서는 1,2집 또한 있었기에 아끼지 않고 들었지만 결코 질리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 공연에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씨디로 듣던 것과는 또 다른 생동감이 있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개인적으로 첫사랑이었던 3집과 이후 발매된 4집이 제일 좋았다. 그 당시의 나의 감성을 자극하는 괜히 나를 센치해지게 하고 몰입하게 한 것은 밴드의 상투적이지 않은 연주와 그의 가사이지는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의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일기도 종종 들어가보면 엿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의 글재주를 보고 씨에나가 권유하고 조금 지도하여 책 <보통의 존재>를 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과 함께 2권은 스테디셀러로 아직도 잘 팔리고 있고 한권은 장편소설로 망한 작품이긴 하나 내방에는 세권 모두 소장되어있다. 2017년 여름 6집을 마지막으로 발매하고 공연 한번 없이 언니네 이발관은 활동을 종료하였다. 일기도 홈페이지에 은퇴의 인사말만 남기고 더 이상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다. 그를 덕질하던 팬으로서 아쉬움이 크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응원하고 싶다.
참고로 언니네 이발관 밴드의 결성과 밴드와 보컬의 전설과도 같은 에피소드들은 그의 홈페이지나 출간된 그가 쓴 책들을 보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가 있다.
(사진은 언니네이발관 3집 앨범 자켓입니다. "꿈의 팝송". 그리고 책 사진은 에세이 "보통의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