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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음 속의 씨앗이었다.>

by 까르멘 2018. 3. 10.

 

 

 

 

 

20180310<나는 얼음 속의 씨앗이었다.>

 

감당할 만큼의 공감이나 감당할 만큼의 이해는 무엇일까? 그러한 공감과 이해는 정말 진정한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난 이제 만 37세가 다가오는데 그 기간 동안 눈과 귀와 입을 막고 펑펑 울었던 시기가 있었다. 

 

실체가 없던 나는 비유와 루머로 세상의 온갖 일들로 비유당하곤 했고, 떠도는 온갖 악이라 생각되는 것들로 비유를 하면 내가 상처받을 것이라 세상은 생각하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판타지만 같던 비유에 상처를 받기에는 튼튼한 샌드백처럼 너무 덤덤하였다. 그들이 내가 그 악의 중심에 있길 (사실여부와 진실여부와는 별개로) 바라는 비유들은 1차적으로는 심드렁하게 생각하였다. 그것들의 이면에 있던, 2차적으로 사유를 해야 이해가 가능할 증오와 분노와 질시를 직관할 수 있던 나에게는, 그것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당시의 언어로 공통되게 합의된 언어가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던 것을 나만 알고 있는 것만 같았고, 그러한 것들에 대한 비유들을 현실언어로 풀이를 하면 나는 암호해독을 하는 사람으로 이상하게 취급할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풀이들이 상당부분 합당한 것으로 판명되면 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어버리곤 하는 일이 될 뿐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주인공 엘리스는 작품속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지만 그 작품을 보거나 읽는 사람들은 엘리스의 입장에서 안전하게 한걸음 떨어져 감상을 하고 이해하는 듯 여러 언어로 표현 할 따름이다. 샌드백이 감당할 만큼의 펀치를 맞는 것처럼 말이다. 평론을 하거나 감상을 나눌 때에는 그 정도까지의 노력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것은 감당할 만큼의 공감이나 이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엘리스의 어려움이나 부대낌을 공감하거나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마법이라도 일어난 듯 자신이 작품 속의 엘리스역으로 그 판타지적 세상에 떨어져 부닥친다면 어쩌면 그때는 감당 못할 어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샌드백이 되어 권투선수의 훈련에 유용하게 쓰이다가 조금씩 낡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느 강펀치의 권투선수에 의해 샌드백이 터져 모래가 쏟아져 나와 버리는 일이 그러할 것이다. 온갖 악의적 비유들이 샌드백에 날리는 펀치라고 한다면 난 샌드백도 아닌데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역할을 맡아버리는 억울함이란. 샌드백은 무생물이라 펀치를 아무리 맞아도 데미지도 거의 없고 감정도 없겠지만, 그들의 전투적인 펀치에 담긴 감정을 나도 모르게 읽어버리는 나란 사람은 데미지는 받지 않아도 그들을 환멸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보는 족족 그들의 악의를 읽었고, 듣는 족족 그들의 탐욕을 읽었다. 그리곤 나 스스로를 닫아버리고 스스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그들의 악의를 알아챌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속상해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이유없이 자신을 미워한다면 그에게 이유를 만들어주어라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악의적인 복서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주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나는 망가져가고 낡아져갔다. 스스로의 생명이 멈추길 바랬고, 성장하던 나무이던 나는 화염에 싸여 스스로를 태워버리고 씨앗을 남겼다. 그 씨앗은 추운 겨울동안 단단하고 차가운 얼음 속에 갇혀지냈고 스스로의 모체를 잃어버린 감당 못할 절망 속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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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음속의 씨앗이었다. 세상과 주변에 얘기할 무언가조차 내 안에서 찾아내기 어려운. 생명이나 생명이라 말하기 곤란한 발아전의 씨앗. 사람들은 어서 씨앗을 꺼내려 망치로 얼음을 깨려하고 이빨로 얼음을 부수려고도  했다. 나는 차가운얼음속에서 두려움을 느꼈었다.

 

 

 

 

하지만 나의 절친은 얼음속에서 침묵하던 나를 양지바른 곳으로 이끌고 얼음을 천천히 녹이고 조심스레 땅에 심어 따스한 온기와 함께 물을 주었다. 알맹이도 없이 공허한 그래서 침묵속의 나는 조금씩 싹이나기시작하고 자라나기 시작해 줄기를 뻗고 이파리가 생기기시작해 나무가 되는 꿈도 꾸게된다

 

 

 

 

시간이 지나 내가 수익성있는 유실수라는 걸 알고 거름도 주고 물도 주는.사람도 가끔 있었으나. 난 잊지 못하련다. 내가 어떤 나무가될지도 모른채 얼음을 녹이고 물을 주며,싹이트고 이파리가 생겨 자라나는 걸 보는것만으로도 생글 생글 웃던 절친의 백만불짜리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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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네장의 사진은 모두 본인이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