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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에 관한 기억을 소환하면서...<명조스님>편

by 까르멘 2018. 3. 26.



20180324 지인들에 관한 기억을 소환하며...<명조스님>편



난 사실 불교신자에 가깝기는 했었지만 1년에 2~3번 산이나 시내의 절을 어머니와 함께 들르는 정도였다. 어릴 때부터 불교와 관련된 우화를 읽거나 관심 있어한 적은 가끔 있었지만 그렇다고 경전을 읽거나 공부한 적은 별로 없었고, 다만 경전이라고는 천수경이나 반야심경정도 읽었을 뿐이다. 참고로 천수경이나 반야심경은 불교경전 중 가장 분량이 작은 경전이다(몇 페이지가 채 안된다).



그러던 어느날 2002년경(내 나이 22세 때) 작은 절인 미타사의 비구니스님인 명조스님을 어머니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몇 달에 한번 꼴로 어머니와 함께 명조스님을 만나거나 때론 나 혼자 명조스님과 그 동료 비구니스님들을 뵙곤 하였다. 이쁜이라는 개를 길렀고 피망맞고를 하시기도 하는 몸은 매우 후덕하시고 쾌활한 분이었다. 



어떤 날에는 밥을 사주시기도 하고, 난 명조스님이나 지인인 비구니스님들의 사진을 찍어서 인화하여 드리기도 했다.



또 어떤 날에는 어머니와 명조스님과 함께 근처 산으로 산책을 가는데 명조스님이 까르멘이 나중에 돈 벌면 나 절하나 지어줘라고 하셨다. 명조스님이 혼자 계시는 미타사는 매우 조촐한 법당이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내가 20대 초중반시절) 제가 절을 지을 만큼 돈을 벌 리가 없을 텐데요. 제가 그렇게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라고 하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더니 명조스님은 까르멘은 그만큼 돈 벌 수 있을테니 걱정말라는, 그런걸로 걱정을 다한다며 웃으셨다. 



그 시절 나에게 있어 명조스님은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또한 내가 찾을 사람도 없던 외로운 시절 가끔 뵙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분의 그러한 반농담 섞인 말은 나에게 조금은 자신감을 얻게 해주기도 하였다. 




하루는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셨었다. 불교에서는 우주만물의 이치가 인간 개개인에게 담겨있어 스스로에 대해 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면 그 이치를 깨우칠 수 있고 우주만물의 주인은 개개인이라고(대략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생각하는데 ,


기독교에서는 우주만물의 주인은 각자 개개인이 아니라 주하느님이고 혹은 예수님이라고 생각한다고, 개개인도 중요하지만 주하느님과 예수님이 워낙에 커서 개개인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덧붙여 주하느님 혹은 예수님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치게 된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오래전에 들은 얘기라 정확히 정리는 할 수는 없지만 당시에 그 얘기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스스로를 탐구하여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기에는 내안이 너무 공허하고 텅 빈 느낌이어서 나라고 하는 무언가가 없어 탐구에 곤란함을 느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스스로를 주인이라고 칭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안의 공허함으로 인해 무언가에 의지하고 의탁할 만한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기독교라는 미지의 무언가에 언젠가는 몰입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 난 그리하여 삶의 우여곡절을 몇차례 더 겪고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게 된다. 개종을 하게 된 데에는 명조스님에게는 의리상 미안하고 죄송스런 마음이지만 언젠가 돈을 벌게 된다면 크고 화려한 절은 못되더라도 절을 지어드려 따뜻하게 나를 대해준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갖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명조스님이 그때까지 건강하게 계시면 좋겠다는 소망과 함께.


(윗 사진은 직접 찍어드린 명조스님과 기르던 개 이쁜이, 아랫사진은 퍼온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