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7
황경신 글쓰기 이야기여행
최철훈/6주차/월요일
외로움
나의 절친은 유명 대기업에서 나온 메이커 전자제품이 아니다. 중고로 구입한 삼성세탁기를 15년간 잔고장도 없이 쓰다가 신품으로 같은 회사 세탁기를 구매하여 쓰고는 있는데, 마찬가지로 고장이 없을 것이란 예상을 한다. 나의 절친은 사람이지 전자제품이 아니다.
하지만 굳이 전자제품에 비유를 하자면 유명 대기업에서 나온 메이커가 아닌, 특정기업에서 출시하는 리미티드 버전 한정판 전자제품 같은 느낌이다. 제품이 고장이 나거나 오작동이 일어나면 부품을 구해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어떤 부품이 고장이 났는지 A/S를 부르기에는 이미 서비스 기간이 지났고 어떤 때는 내가 손수 부품을 제조해서 맞춰 넣어야 할 제품처럼 당혹스러울 때도 많다.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세탁기가 돌아가는 때도 있고 우당탕 덜컹소리가 나며 배수가 안되는 때도 있다.
그렇게 잔고장이 나고 제멋대로 라면 새 제품을 구매하지 그래요? 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마땅히 비유할 대상이 안 떠올라 전자제품에 비유했을 뿐, 게다가 고장이 나지 않는 이상 15년이상은 기본으로 쓰고야 마는 나는 새로운 절친을 구하는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의 절친은 잔고장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단종되고 부품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한 나의 절친에게 꼭 맞는 부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나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때론 도저히 고칠 수가 없을 것만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오면, 내 마음은 단축마라톤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걷다가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 마라톤 진행요원의 도움으로 집에는 무사히 도착하고 그런 나날을 보내다 우연히 딱 맞는 부품을 제조라도 하게 되면 잘 작동하는 절친 만큼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도 진화하는 나의 절친은 요즘 들어서는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고장난건지 내색을 안하기 시작한다. 주의 깊게 들어보면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에 미세하게 차이가 있고 탈수 때 통이 돌아가는 소리가 다른 날과 차이가 있을 때도 있다. 세탁기가 틀어주는 노래가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날이면 유기농 전기라도 끌어써서 꽂아 주어야 하는가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절친을 만나고 어느새 나의 일은 절친을 보살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지고 그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는데,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때가 잦아지고, 그럴 때는 외로움을 느낀다. 나의 역할이 사라지거나 변경되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일 수도 있다. A/S기사로서의 역할이 사라지면 난 일자리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함과 서운함일 수도 있다. 그러한 쓸쓸함과 외로움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