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여행을 다녀와서(본인위주로 정리)
201905018 오사카여행 2박3일
2007년에서 2008년까지 1년 8개월가량 종로의 한 일본어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웠다. 11년전의 일이다. 회화위주로 배워서 일본식 한자는 읽을 줄 모르지만 주5일간 1일 1시간씩 한국인 선생님들에게서 기초문법도 배우고 네이티브선생님들에게서도 회화수업을 배웠다. 고된 수업와중에서도 배우는 기쁨을 갖게 되어 즐거웠던 기억이 더 많은 학원생활이었다.
그러나 그뿐, 일본드라마나 볼 때 조금 더 흥미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써먹을 일이 11년 동안 거의 없었다. 일본어를 배워 놓고 정작 일본에는 안 가본 나는 그 이유를 대보자면, 외국에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제력이 넉넉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클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절친이 작년부터 일본을 가보자고 권해서 마음을 다잡고 해외로 갈 준비를 했다. 그 준비로 작년 크리스마스 때에는 혼자 제주도를 가보았다. 비행기에 대한, 공항수속등에 대한, 여러 가지 여행에 필요한 절차가 조금은 익숙해지고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 마음의 준비가 나에겐 가장 중요했었다.
일단 각자 비행기티켓을 끊고 숙소도 잡고 여행안내서도 구입하여 벼락치기로 준비를 하여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으로 날아갔다. 절친과 사촌여동생은 먼저 티켓을 예매하여 5월 12,13,14(일,월,화) 일정을 잡았고, 난 연가를 화요일까지 낼 수 없는 관계로 5월 11,12,13(토,일,월) 체류하기로 했다. 같은 호텔을 예약했으나 방은 따로 잡게 되었다.
절친 보다 하루 일찍 이른 저녁 무렵 인천공항에서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한 나는 가슴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인천공항을 출발하기 까지만 해도 길이나 잃어먹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구글지도를 검색하고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잔뜩 긴장상태였는데 막상 공항에 도착하니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긴 일렀다. 일본어를 써먹을 수는 있을까?하는 조바심과 낯선 곳에서 사고 없이 잘 지내다 갈 수는 있을까?하는 걱정은 아직 머릿속에 잔뜩 담겨져 있을 뿐이었다.
비행기에서 입국심사서류들을 작성해놓았는데 입국심사 줄이 길어서 40분정도가 걸렸다. 와이파이도시락을 켜고 스마트폰은 소프트뱅크로 연결이 되었다. 공항에서 간사이스루패스를 사고 젊은 남녀직원과 여행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1년만에 일본어를 써보니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단어가 잘 생각이 안 나긴 했지만 뭐 이 정도쯤이야 일본에 온 관광객을 대하는 현지 직원들에게는 애교수준이었으리라 믿는다ㅠ.ㅠ.
셔틀버스를 타고 2터미널에서 1터미널로 가고 공항의 직원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귀국시 이용하는 항공사가 몇층에 있는지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하는 질문을 하고 난카이라인과 난카이라피토는 뭐가 다른지도 묻고 하면서 일단 난카이라인의 보통 열차를 타면서 종점인 난바까지 갔다.
그곳은 굉장한 번화가로 보였고 곳곳의 특징적인 곳들은 사진을 찍거나 주의깊게 보아두었다. 그 다음날 다시 공항으로 가서 절친과 동생을 마중 나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난카이난바역에서 도톤보리로 가고 싶었는데 난 지도를 잘 못 보는 관계로 보통 길을 찾아갈 때에는 현지인들이나 지역주민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을 선호한다. 절친은 지도를 비교적 잘 보는 편이라 되도록 거의 안 물어보는 스타일이다.
마침 길거리에는 해가 지기 시작했고 길거리에는 홍대 앞에서 버스킹을 하는 것처럼 실력 좋은 밴드들이 연주나 노래를 하는 것이 많이 보였다. 길가는 일본인에게 맛있는 것이 먹고 싶다고 도톤보리로 가고 싶다고 하니 잠시 주저하더니 함께 가자고 했다. 안내를 받으며 도착지 즈음에서 여기가 도톤보리라고 얘기 해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저녁의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명동이나 홍대앞 같은 이곳을 다녀보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많은 이 도톤보리에서 제일 먼저 먹은 것은 교자만두였다. 그리고 한참을 헤매다 일본라멘을 먹었다. 이 두 가지는 절친은 별로 안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행을 해서 함께 다닐 때에는 먹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나 줄이 길었고 독특한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카메라를 들고 서울의 번화가를 다니며 길을 익히고 독특한 곳을 찾던 탐험가의 마음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강릉에서 살다가 서울 올라왔을 때에는 모든게 자극적이고 신기하고 독특한 곳이라는 느낌이었지만 서울의 여러자극에 무뎌진 나는 도톤보리에 오자 새로운 장소를 기억하려 애쓰는 마음은 적었다. 충격적으로 자극적인 거리의 풍경은 더 이상 아니게 되었던 것 같다. 강릉에서만 살다가 난바역의 도톤보리에 오면 분명 다를 것이었겠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려서 밤 10시가 넘었고, 숙소로 체크인을 하러갔다. 숙소는 오사카성 근처의 호텔이었는데 아직 구글지도에서 안내하는 지하철 타는 법 등에 익숙하지 않아 결국엔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서 물어서 갔다. 첫날에만 일본인 남자 3~4명 여자4~5명 정도에게 물어봤던 것 같다. 모두들 친절했고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눈치채버리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모두에게 안내해주어서 감사하다거나 친절하신 일본인이군요라는 인사를 드렸다.
편의점에서 복숭아맛 맥주를 한 캔 사들고 숙소에서 체크인을 했다. 여권이 필요했었다. 다음날 절친과 동생을 마중나갈 걱정에 그리고 밤이 늦어도 배가 고파서 잠이 오질 않았다. 낯선 곳에 가면 잠을 잘 들지를 못하는 편인 나는 편의점에 가서 빵과 음료수, 그리고 잠이 안 올 때의 나에겐 특효약인 우유를 두 개 샀다.
구글지도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를 이제는 알게 되고(보통은 카카오지하철이나 버스를 사용했었다. 네이버지도나) 인터넷이 안 될 때를 대비해 화면을 캡쳐해두었다. 큰누나와 보이스톡으로 통화를 잠깐하여 잘 왔다는 얘기를 하였다. 일본의 현지 티비는 어떨까? 궁금해서 조금 돌려보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5시경에 깨었다. 샤워를 하고 조식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서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트위터를 보고(한국에는 별 일은 없어 보였다. 있어도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트위터를 통해서 대부분 접하고 시민으로서 참여하고 싶을 때가 있다면 가끔 마음을 찍거나 리트윗을 하거나, 어쩌다가는 나도 글을 올린다.) 5.12(일)부처님 오신날이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속상해하는 트윗을 봤다. A:부처님이 일요일에 오시다니요..ㅠ.ㅠB:부처간 조율이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우스개 트윗이 인상적이었다.
짐을 챙겨(카메라 포함- 절친과 동생 그 둘을 찍어야 할 일이 생길 수 있으므로,그러나 그 둘이 사진은 괜찮다고 해서 부담을 많이 덜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관광이 아니라 업무의 연장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일단 근처의 오사카성으로 갔다. 왜이리 아이를 포함한 가족들이 길거리에 많이 보이나 했는데 오사카성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오사카성 걷기대회하는 날이라 입장료가 무료라고 했다. 앗싸 땡잡았다! 하고 주변을 배회하였다. 걷기대회에는 500명이 넘는(나의 추정??) 사람이 출발을 대기하고 있었다.
어딜 가나 한국사람 포함 외국인이 많았다. 천수각을 그럴듯하게 찍고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간사이국제공항으로 갔다. 오사카성에서 공항까지 1시간 30분정도가 걸렸다. 공항까지 한정거장 남기고 절친에게서 보이스톡이 왔다. 2터미널에 왔다고 해서 거기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셔틀버스를 타고 1터미널까지 왔다. 절묘하게 시간 맞추어 마중을 나올 수 있었고, 이코마카드를 발급받아(티머니카드 같이 충전식 교통카드) 난카이라인을 타고 난바역으로 갔다. 사촌동생은 말수가 적었고 일본어를 곧잘했다. 그리고 트위터를 수시로 했다.
도톤보리의 시장스시라는 스시집을 가서 주문을 했고 그곳의 셰프가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스시가 큼직했고 맛도 좋았다. 도톤보리를 구글지도와 여행안내서를 보면서 다니는데 어제 저녁보다는 낮에 사람이 적어 다니기가 조금은 더 수월했다.
즉흥적으로 어딘가를 들르기도 하고 서점이나 문구점, 간식, 인형, 팬시점, 생활용품, 약국 등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침 스님들이 서예전을 해서 관람을 하고 스님과 얘기를 나누다 사진도 몇 장 남겼다.(내가 일본에서 길물어보는 것 외에 일본어로 대화다운 대화를 한 곳은 이곳이 유일할 것만 같다.ㅎㅎ)
사람들이 많은 곳을 다니면 그러하듯 쉽게 지쳤고 숙소에 가서 무거운 짐을 놔두고 한숨자고 다시 도톤보리로 나왔다.
저녁은 돈가스를 먹고나서 다들 김치가 필요해 넘 느끼했어를 남발했다. 탄산음료를 먹고 케잌전문점에 가서 디저트를 먹고 무인양품과 돈키호테(음료, 술, 간식거리, 의약품, 악세사리 저렴하게 파는 곳)를 갔다. 이곳에서 선물거리를 나도 몇 개 샀었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와 편의점에서 사온 우유와 빵을 먹고는 잠들었다.
다음날 오사카코의 카이유칸(커다란 수족관이 있는 곳)을 가자고 하고 일찍 일어나 8시반에 보자고 했으나 둘은 늦잠을 자서 9시반에서야 나왔다. 10시가 조식 마감인 관계로 얼른 조식을 먹고 카이유칸에서 해달과 돌고래와 물개와 펭귄과 고래와 상어와 열대어와 말미잘과 개복치와 가오리 등등을 보면서 오늘의 수족관 관광은 정말 맘 편히 즐기게 되었다, 여기서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났고, 난 처음엔 조심스레 관람하다가 와! 신기하다 헤엄친다! 우와~ 여기 나타난다! 등 바다에 사는 이들을 보면서 한국말로 호들갑을 떨었다.
나도 심적으로 일본에 적응을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쩌랴 난 수족관을 보고나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고 먼저 귀국한다는 인사를 하고선 바로 비행기 타러 공항으로 가야하는걸...
작별인사를 하고 둘은 오사카성을 들르고 도톤보리도 더 들르고 그 다음날 조식을 먹고 바로 공항으로 갔다고 한다. 난 간사이국제공항을 세 번 들르게(처음 간사이 도착할 때, 마중나갈 때, 귀국할 때) 되는 것이라 조금은 더 익숙하고 능숙하게 탑승수속을 밟고 귀국을 하였다.
한국에 돌아오니 신진대사가 잘되어서인지 마음이 편해지고 긴장이 누그러져서 인지, 방구가 뿡뿡 계속 나왔다. 굉장히 민망하지만 그만큼 일상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어서 사고없이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절친이 없었으면 난 평생 일본 갈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항상 절친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결정적으로 큰일을 치를 결단을 하도록 절친은 항상 도와주고 응원해준다. 나 또한 막상 닥치면 일을 열심히 하지만 그 일을 시작하기까지의 결심과 결단력은 부족한 편인데 나의 절친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도와주고 보완해준다.
항상 고맙고 사랑하는 나의 절친.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愛して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