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8 휴일
휴일에 뭐하고 지낼까?라는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하는 생각이지만, 근 몇 년간은 정해져 있어서 큰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예전에 백수시절에는 시간이 남아 돌아서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료할 때에는 티비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인터넷 게시판을 줄창 지켜보거나 하다가 정 할일이 없으면 카메라를 들고 갈 준비를 하고선 지하철 노선도나 서울경기의 지도를 보거나 했었다. 카메라는 시간 때우기의 마지막 카드이자, 마지막 카드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자주 불려 나오는 카드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남아 돈다고 밀도있게 그 시간을 다 활용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낼 때 좀 더 긴장감 있게 여가생활도 충실할 수 있었던 것만 같다.
서른에 직장을 잡고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일주일 단위로 돌아오는 휴일과 성당 청년생활의 주기성으로 휴일은 백수시절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사실 똑같이 휴일날 하는 일들은 별다르지 않았으나 순수예술의 길을 가는 것을 접게 되었고 그러자 훨씬 마음 편하게 부담없이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하게 되었다.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자 아티스트가 되는 것을 포기하게 되자 오히려 역설적으로 글(글이라고 해도 일기나 편지나 감상문정도이지만..)이 더 잘 쓰여지고 사진을 더 잘 찍게 되었다.
일상이 직장생활이 성당생활이 오히려 나를 충만하게 해주었고 예술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가끔 휴일날 작업하는 글과 사진이 더 좋아지게 된 것도 같다. 간절히 바랄 때는 성과가 미약했었는데 참ㅎㅎ.
거기에 오랜시간 동안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절친의 역할 또한 컸다. <요즘 재미난 영화는 뭐야?> <이 책(혹은 영화, 티비프로그램) 요즘 재밌어.><요즘 보는 책은 뭐 있어?><같이 음악 들으며 가자><재미난 글 없을까?><너가 찍은 이 사진 참 맘에 들어, 예쁘다.> 주로 절친이 나와 함께 있을 때 건네는 얘기이다.
이러한 대화를 유지하려면 난 휴일날 열성을 다하여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다운받아놓거나 글을 써놓거나 사진을 찍어두어야 했다. 휴일날 집안일을 해두어 부지런하다고 칭찬을 받기까지하면 숨어있던 자존감마저 회복되는 기분이다.
대신 이런 휴일생활이 갖는 단점도 있는데 사람을 만나는 일이 별로 없게 되는 점이다. 직장에서 성당에서 사람들 많이 만나는데 휴일날까지 사람을 만나면 난 넉다운이 될 것 같기도 해서 이런 점은 휴일날 쓸쓸하고 외롭더라도 양해해야하는 일이기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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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진은 -영화<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에서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