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0은비와의 추억
나와 11살차이가 나는 사촌동생 은비에 대해 오늘은 써보려고 한다. 은비는 항상 10살차이라고 우기고는 하지만 아무렴 어쩌랴.ㅋ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무렵 한 5학년정도? 그때 이모는 1월달에 은비를 낳았고, 모든 아기가 그렇듯 은비도 잘 울고 우유는 잘 먹고 수시로 응가를 하는 아기였다. 아직 말을 할 줄은 모르는 그런 아기였고, 아기가 조금 크자 근처의 아파트에서 살던 이모는 우리집에 은비를 맡기고 볼일을 보러가기도 하였다. 그러면 엄마와 나는 은비를 보는데 전념을 하였다.
엄마는 성인이라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초등학교 5~6학년정도밖에 안되는 성장기였는데, 그런 내가 아기에 대해 무얼 알고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무얼 알았을까? 분유를 타는 것도 아직은 할 줄 몰랐고, 기저귀 가는 것도 할 줄 몰랐다. 이런 것은 엄마나 이모가 주로 하였었다.
다행히 은비는 오빠를 잘 따랐고 한편으로는 잘 안 놀아준다거나 하면 펀치를 날리거나 울어버리곤 하였다. (어릴 때부터 은비는 주먹의 힘이 상당(?)하였는데, 사실 나중에 은비는 피아노전공을 하게 된다.) 그러면 얼른 은비를 업고 이런저런 말로 달래주기 시작하였다. 아직 은비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시기였지만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이런 저런 말을 건네며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은비는 성장해서 키도 커지고 그래도 날보고 업어달라고 많이 했다. 은비가 초등학교 6학년때 마지막으로 업어준 것 같다. 그 이후는 키도 크고 몸무게도 늘어 더 이상은 무리였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인가 그때 학교에 갔는데 같은 반 친구가 철훈이 너한테서 우유냄새가 난다고 했다. 은비를 업어주는 일이 많다보니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업어주고 달래 주다보면 은비는 울음을 그치게 되었다. 아직 나도 어린이였던 시절에 그렇게 업어주고 하다 보니 자연히 근력이 세져서인지 힘은 또래보다 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업어주는 일은 힘들고 고되었다. 그러나 안 업어주면 은비한테서 주먹이 날아오거나 울어버리는 관계로 ㅎㅎ
오빠를 그렇게 잘 찾던 은비는 태어난지 1년이 되어 돌을 맞이하게 되는데 돌잔치 상에 앉아있던 은비는 낯선 사람들이 둘러싸자 울음을 터뜨렸다. 마침 내가 보이자 오빠를 불러서 이모는 은비 옆에 앉아 있으라고 했었다. 그러자 은비는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돌잔치상에 올려져 있던 라이타를 손에 쥐었다. 그걸 뺐으려고 하면 또 울어버린 관계로 한창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다른 것을 집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나 교육이나 훈육이라는 이유로 각양각색의 잔소리를 들어서 내 생활이 답답하게 느꼈었는데, 그렇게 느꼈었기에 난 은비에게는 따로 잔소리를 하고 싶거나 화를 내고 싶어도 인내하고 보듬어주고 싶었다. 내가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고 은비가 그런 환경을 똑같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너무 은비가 철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이모가 주로 혼내버린 것 같다.
어떤 철없는 행동을 했었나 돌이켜보면 침대에 누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은비는 동화책에는 관심이 없고 오빠랑 장난치고 노는 게 더 좋았던지 몸을 던져 누워있던 내 배에 철푸덕 엎어지곤 했다. 내가 아파서 <은비! 너!~궁시렁 궁시렁>하면 은비는 좋아서 잡기 놀이로 전환을 한 것 같다. 그러면 이모가 <오빠가 책 읽어 주는데 장난치면 되겠어!!!>라고 하면 잠시잠깐 기가 죽은 은비를 볼 수 있었다.
바다에 이모와 엄마와 은비와 은채(은비동생)와 강릉의 바닷가로 놀러 가면 수심에 비해 키가 큰 내가 텀벙텀벙 바다로 가면(내가 중학생시절인 것 같다. 그 때의 사진을 얼마 전에 은비가 보내주었다.) 오빠가 가니까 아직은 어려서 키가 작은 은비도 덤벙덤벙 바다로 뛰어 들어가서 이모가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은비를 돌보다 보면 학교 공부를 못 할 때가 많았다. 같이 상을 펴놓고 숙제를 하거나 할 때도 있었지만 갑자기 <오빠 응가~>하면 화장실로 급하게 데려다주곤 하였다.
은비네가 원주로 이사를 가서 한동안은 못 볼 때도 있었다. 하루는 엄마와 함께 학교 방학때 원주로 가서 은비와 이모와 함께 근처 산으로 산책을 가기도 했다. 잠자리가 날아다니길래 한 마리 잡아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잠자리를 손으로 잡아준다고 하다가 결국 못 잡고 날려 보낸 것은 참으로 지금도 아쉽다. 이모는 내가 체면 구긴 것을 보고 작게 웃었다. 참 민망한 순간이었다.ㅎㅎ
다시 은비네가 강릉으로 돌아왔다. 이모와 이모부는 사업을 시작했고, 초창기에는 많이 바빠서 은비와 은채를 돌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지금도 바쁘긴 하지만 사업은 번창한 것으로 안다.
하루는 은비와 은채가 장난치며 노는데 쇠로된 작대기를 휘두르면서 놀고 있었다.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었다. 아마 내가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둘을 무릎을 꿇게 하고 쇠막대기로 장난치고 싸우고 하면 엄마 아빠가 얼마나 속상하겠냐고 이렇게 노는 지도 모를 텐데, 엄마 아빠가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는거 매일 못 보냐고 화내면서 쇠막대기로 은비와 은채를 쿡쿡 찌르면서 다그치니 둘 다 눈물을 흘렸다. 은비은채에게 아마 처음으로 화를 낸 것 같았다.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마침 그 다음날이 어버이 날이었다. 얼마 후 이모와 이모부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이모부가 어버이날 편지를 받았다고 좋아하셨다. 내가 은비은채에게 쓰라고 한 건 말씀 안 드렸었다.
은비와 은채의 생일은 하루차이이다. 둘 다 1월생인데 같은 날 낳으려고 했는데 산부인과가 쉬는 날이라서 하루 차이가 생겼다고 한다. 은채가 좀 더 겉모습은 예쁘고 이쁨 받기 쉬울 수도 있는 면이 많을 수도 있는데, 난 은비 어릴 적에 툭탁거리면서 지냈던 시간이 있어 은비에게 더 정이 갔었다.
은비 은채와 함께 있으면 놀이를 같이 하거나 간단한 요리를 내가 해주거나(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돈까스를 튀겨주거나 라면을 끓여주거나 계란 후라이를 해주거나 정도였었다.) 만화영화 비디오를 빌려와서 같이 보곤 하였다.
매년 생일을 챙겨준 것은 못되지만 생일에 은비은채에게는 인형을 사주거나 피아노 악보를 사주거나 취미에 관한 책이나 영화티켓을 주거나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나도 사회생활도 오래해서 저축한 돈도 있고 해서 더 좋은 것을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예전에는 그 당시의 가난한 사정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못난 오빠가 그 정도 밖에 못해줘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은비은채와 함께 하는 시간은 적어졌다. 매일 야간 자율학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였던가?(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잘은 기억 못하겠지만)은비 초등학교 체육대회날에 가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적어 보았듯이 은비은채에게 항상 보살핌을 주기만 하는 관계는 아니었다. 난 아빠도 아니고 친한 사촌오빠일 뿐이지만 나를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반겨해주는 두 동생들이 있어서 내가 긴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나 건강이 안 좋아지고 힘들 때에도 내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힘을 주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모와 이모부는 아직 어리고 철없고 부족한 나를 항상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었다. 이런 것들이 모여 내가 긴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은비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피아노전공을 위한 레쓴을 받았다. 난 이 알바 저 알바를 하거나 공부를 하면서 지내던 시기였는데 전화라도 자주 걸어 주는게 수험생활에 힘이 되지는 않을까 해서 이따금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잘 지내는지 어떤지 물어보다 보면 오히려 내가 챙김을 받는 느낌이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결혼 전- 음악치료 선생님으로 활동을 하였다. 내가 다 뿌듯하고 든든한 기분이었다.)
때론 은채에게는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지 아쉽기도 했지만 은채는 또 나름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것 같다. 예전에 하루 날 잡아 이모와 이모부와 은비와 은채가 함께 있는 날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었다. 바쁜 이모와 이모부와 은채는 또 춘천의 대학교에 있던 시절이라 한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았는데 예전에 이모네 식구들을 찍어준 사진들과 그날 강릉의 여러군데를 돌아다니고 밥과 차를 먹으며 찍은 사진으로 포토북을 만들어 드렸다. 다행히 결과물이 예쁘게 나와 다행이었다.
근래에는 은비가 결혼을 하여 이제 출산 예정일을 3일 남겨놓고 있다. 은비에게는 결혼식 때 내가 촬영을 하고 앨범을 만들어 주었다. 축의금 대신이라고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은비를 애기 때 본지 20여년이 지났는데 이제는 은비가 아이를 낳게 된다니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흐르는건가?>싶다. 은비가 좋은 엄마가 되길 바라며 은비와의 추억을 위주로 은비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은비위주로 글을 썼다고 이모와 이모부 은채가 섭섭해 하지 않았으면 한다.)
<화이팅 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