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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훈의「숨어 있어도 좋은 방」 서평-이혜영

by 까르멘 2020. 10. 15.

최철훈의 「숨어 있어도 좋은 방」 서평-이혜영

 

  "모든 화가는 결국 자신을 그린다."

  인류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부터 수많은 사람이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말해왔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언급했다고 전해지는 이 말에 특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는 「모나리자」 의 얼굴 속에서 다빈치를 발견할 수 있고, 풍경화나 정물화에서도 작가의 아바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문학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시장에서 시각적인 매체로 표현된 작가라는 이의 온전한 인격체를 만날 수 있듯, 한 편의 글을 읽을 때에도 날것의 한 사람을 가슴속에 뿌듯하게 담아낼 수 있다. 더군다나 작가의 생생한 ‘살이’와 감정, 사상이 녹아든 에세이라면 작가와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다름없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최철훈 작가의 에세이, 「숨어 있어도 좋은 방」을 읽고 나서도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한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청년은 ‘좌충우돌 여러 가지를 모색하고 도전하며 씨앗을 뿌리던 20대 시절’을 거쳐 ‘30대가 되어서야 조금씩 씨앗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작은 결실에 대한 희망을 품으며 40대를 맞이’하고 있다. 자신을 과시하지 않지만 도전했던 일과 이룬 일,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은 일들을 펼쳐 보이며 자신을 긍정할 줄 알고, 호탕한 목소리로 의리를 강조하지 않지만 어렵게 취업하고 나서 ‘직업전문학교’ 동무들에게 복분자 주스 한 병씩을 대접한 재우 형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안다. 젊은 시절 한 동안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열정을 고갈시키며 살다가 ‘신림동 화실’ 선생님의 응원에 힘을 얻어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요양원 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오래 전에 친오빠를 잃은 80세 어르신에게 다정하고 근사한 오빠로 화(化)하기도 했다.

 

  화려한 인맥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싸이월드,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관심사를 공유한 사람들과 진득한 대화를 나눌 줄 안다. 문학과 음악, 영화에 대한 잔잔한 사랑을 간직하고, 사진 기술을 배워 주변 사람들의 생일잔치, 돌잔치, 결혼식에 앨범을 만들어 선사하기도 한다. 또한 힘겨웠던 시절을 견디고 지금의 안정적인 생활을 다지기까지 자신에게 따뜻한 애정과 지지를 보내준 지인들-지금은 연락처도 모르는-에 대한 보은의 의미로 자신의 삶이 진실하게 녹아있는 이 글을 ‘서술’하였다. 

 

  ‘숨어 있어도 좋은 방’에서 작가는, 섬세하고 물렁물렁하기도 하며, 여리고, 예민하며, 뜨뜻하기도 하며, 정감 있고 다감하며 조용히 유머러스한 ‘자기다움’을, 약간은 수줍은 용기를 가지고 드러내면서 독자와 소통하고 싶어 한다. 작가는 ‘숨어 있어도 좋은 방’을 찾아서 안도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진짜 자신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아도 좋은 방’을 찾아서 안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사주쟁이한테서나 ‘초년운이 안 좋다’는 풀이를 들어서 의기소침해있었지만  작가의 앞날에는 시나브로 줄기도 더 단단해지고 크고 작은 열매들도 주렁주렁 열릴 것 같다. 왜냐면 작가는 수줍어하면서도 자신을 긍정할 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을 보살피고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열정과 도전정신, 따뜻한 가슴을 가졌기 때문이다. 

 

  산문에는 흥미진진한 플롯을 가진 허구적인 이야기도 있고, 사회 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날카롭게 분석한 글도 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애정을 품고 글과 노래, 그림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교감하기를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런 글도 있다. 요즘 들어 많은 작가들이 에세이 류의 작품을 쓰고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것은 삭막해진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진정한 영혼의 교감과 자기다움의 발견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으로 다양한 SNS의 통로를 누비고, 우연한 사고에 의해 사라질 지도 모르는 사이버 공간에 자신의 일상과 감정을 기록하며, 취업과 자기 정체성의 발견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며 그 고민들을 음악과 시, 소설, 그림과 사진 속에서 위로받고 해답을 찾으려고 모색하는 작가의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문장의 간결성과 정확성, 구성의 논리성과 긴밀성, 집중력 있고 치밀한 소재의 탐구 등은 작가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작가가 이만큼 이뤄놓은 것과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그의 성실한 삶의 태도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