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대신 눈에 띄는 구절들을 발췌하는 것이
원작의 느낌을 잘 전달할 것만같고
본문전체를 읽어보고싶은 생각도 하게 되어
책도 직접 찾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 작업을 해봅니다.
블로그 <숨어 있어도 좋은 방>에서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이 "독후감 대신 인상깊은 구절 발췌정리하기" 작업이
한동안 지속되다 보면
이 블로그에 멋진 서재가 하나 마련되어지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에는 다양한 부캐를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 요조님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을 읽고 인상깊거나 공감되는 부분들을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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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8<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요조 산문
읽다가 인상깊은 글귀들 발췌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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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잡한 아픔들에 주로 모른다는 말로 안전하게 대처해왔다. 뺴어나고 노련하게, 그리고 예의바르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손사래도 치고, 뒷걸음질도 친다.
그 와중에 김완이나 고승욱 같은 사람은 모르는 채로 가까이 다가간다. 복잡한 아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손을 내민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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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그림에는 입이 있다. 그래서 말한다. 가치관, 세계관, 시선과 꿈, 욕구와 불만을 있는 힘껏 표현한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고 해도 그 없음을 말한다. 자연스럽게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은 경청한다. 어떻게든 작품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보통 작품과 감상자가 맺는 관계일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작품 앞에서는 그 관계가 거꾸로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선 입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리는 것 같았다. 감상자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걸 모두 씨앗처럼 받아내 심을 것처럼 작품들은 숭고한 밭고랑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어 작품들 앞에서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들어주는 예술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니. 음악이어도 그것이 가능할까? 나는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듣기 위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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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주변 훌륭한 직업인의 공통점:토할 만큼 반복해온 말을 매번 처음하는 것처럼 한다.
2. 지난 13년간 말해왔는데도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시사하는 점:앞으로 평생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더라도 사람들은 지겨워할 리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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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수려한 섬에서 몇 년 살고 나서야 서울에서 내내 살았던 내 지난 삶을, 이 아무것도 아닌 시절을 ‘아름답다’는 감정 아래에서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움은 이토록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