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대신 눈에 띄는 구절들을 발췌하는 것이
원작의 느낌을 잘 전달할 것만같고
본문전체를 읽어보고싶은 생각도 하게 되어
책도 직접 찾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이 작업을 해봅니다.
블로그 <숨어 있어도 좋은 방>
< blog.daum.net/farany >에서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이 "독후감 대신 인상깊은 구절 발췌정리하기" 작업이
한동안 지속되다 보면
이 블로그에 멋진 서재가 하나 마련되어지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에는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읽었습니다. 번역에 따라 책제목은 <생의 한가운데>로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전혜린이 우리나라에 소개 및 번역해서 유명한 책입니다. 이번에 구해서 읽은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박찬일이 옮긴 책을 읽었습니다.
22년전에 몰두해서 읽었고, 한때 온라인 상에서 닉네임을 주인공인 <니나 붓슈만>으로 정해 활동을 했었습니다. 22년전 어떻게 이책을 접하게 되었는지 기억은 잘 안납니다. 다만 당시 문학과 사랑과 세계관에 대해 기본적인 틀이 형성이 안 되어 있던 무지했던 시절에 이책이 당시 저의 삶의 상황을 정리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교과서로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21세기에서도 충분히 문제작이 될 수 있는 파격적인 소설책을 22년전에 읽게 된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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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니나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그녀의 인생에 대해 난 무엇을 알고 있나?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그녀가 스물여섯에 아이를 가졌고, 그후 아이의 아버지와 결혼했으며, 그리고 1년 후에 이혼했다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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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내 생각인데, 거짓말하지 않고도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본인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오. 재미있지요. 그러나 어려운 거죠. 아무데서나 충돌하고, 구설수에 오르고, 항상 극단으로 치닫는 당돌한 존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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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고, 먹고, 자고, 직업을 갖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런게 다 뭐죠? 이것만으로는 모자라요. 사람들은 이런 것에 익숙해져서 마치 거기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타이르죠. 그래요, 다른 어떤 것은 필요로 하지 않고, 또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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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이 없어지면 늙기 시작하는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 아침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어. 나는 마치 아침마다 문간에 서서 몸을 쭉 늘이고 바람 속에 코를 쳐든 채 사냥에 대한 욕심으로 몸을 부르르 떠는 사냥개와도 같았어. 그런데 지금, 지금 나에게는 놀랄 일이 없어. 그리고 인생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풀밭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있는 힘을 다짜내야 하는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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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는 네가 갖고 있는 조용한 세계에서는 살 수 없을 거다. 뜨거움, 소란, 변화들이 있어야 하는 애다. 그애는 많은 모험을 무릅쓸 그런 종류의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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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는 전혀 방해물이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은 잘되어 왔다. 분명히. 그러나 또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아무것도. 나는 자기 배를 항구에 매어둔 상인과 같다. 배를 내보내야 돈을 벌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를 바다에 내보내는 것은 위험했으며, 나는 본래 모험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었다.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남자가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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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운명이 없어. 그런데 그것은 그들 탓이야. 그들은 운명을 원하지 않거든. 단 한 번의 큰 충격보다는 몇백 번의 작은 충격을 받으려고 해. 그러나 커다란 충격이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거야. 작은 충격은 우리를 점차 진창 속으로 몰아넣지만, 그건 아프지 않지. 일탈이란 편한 점도 있으니까. 혹은 마치 파산 직전에 있는 상인이 그것을 숨기고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한 후 일생 동안 그 이자를 갚아가며 늘 불안하게 사는 것과도 같지. 나는 파산을 선언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쪽을 택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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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집시 같은 데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삶은 잠정적이었다. 한군데에 천막을 치고 한동안 살면서 정성을 쏟다가 그곳에 대해 알 듯하면 망설임 없이 천막을 거두고 그곳을 떠난다. 그녀의 얼굴에는 야생적 자유에 대한 행복감과 고향 없는 사람의 슬픔이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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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웅이 아니야. 가끔 그럴 뿐이야. 우리 모두는 약간은 비겁하고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지.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어. 내가 그리고 싶은 게 바로 이거야. 우리는 착하면서 동시에 악하고, 영웅적이면서 비겁하고, 인색하면서 관대하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밀접하게 서로 붙어 있다는 것, 그리고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한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하도록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말야.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도 그것을 간단하게 만들려는 게 나는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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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한 것은 인간을 볼 줄 아는 나의 안목이 니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떤 마녀적인 것, 아니 어떤 요정 같은 면모가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런 알 수 없는 매력 때문에 나는 니나를 사랑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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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계속 말했다.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 그것을 계속 공부하는 것은 참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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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 나는 완고하게 소리쳤다. 나는 이성에서 떠나 있었다. 당신은 위험을 사랑할 뿐이야. 모험을, 그리고 인생을.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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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당신은 다시 나에게서 떠나가려고 하고 있어요. 당신은 지조가 없고, 당신이 그것을 알 리가 없죠, 나의 사랑에는 마치 열매 속에서 씨가 담겨 있듯 지조가 담겨 있소. 당신은, 당신은, 사랑하다가, 떠나고, 또 사랑하다가, 또 떠날 수 있는 사람이오. 나를 지나가고, 다른 사람을 지나가고, 모든 이들을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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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쫓는 것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그녀가 어렴풋이 목표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를 붙들어둘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남자일까. 니나는 한 남자에게 붙들리기 전에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해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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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옥을 알고 있어. 사람이 완전히 비참해져서 결코 다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그리고 어떤 한 사람과 영원히 더 이상 만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지옥일 거야. 그리고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는 것도, 나는 덧붙였다. 니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다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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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차갑지 않았으며, 메마르지 않았다. 냉혹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열정이 있었으며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여러 정신적 자세를 얻기까지 니나는 어떤 대가를 치렀을까? 이제 나는 니나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토록 강력한 힘과 용기를 요구한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 앞에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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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말해. 니나 부슈만은 현대 여성이고 해방된 여성의 전형적인 본보기이다. 그녀는 스스로 벌고 아이들을 혼자 키운다. 남자가 필요 없다. 남자처럼 분명히 사고하고 생을 움켜쥐고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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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일이 극단까지 치우쳤을 때, 극단까지 가서 네 힘이 부칠 때 행복을 느끼는 것 같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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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려고 해요.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해요. 그러나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삶을 비켜갔어요. 한번도 모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잃지도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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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이제야 넓은 바다에 당도해서 바람을 업고 가는 열두 개의 돛을 가진 배와 같다. 지금의 그녀는 나에게는 낯설다. 이전의 우울, 음침하고 완고한 정열, 변덕스러운 마녀 기질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녀는 성공했다. 인생의 밝은 부분, 이성, 지성들을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