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담론에 대한 불편함과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기도하는 나
청소년기에 거대담론에 심취하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의 뜻을 알고 싶어하고 얘기하길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자유, 평등, 국가, 민족, 전쟁사 등등>에 대해 생각하고 알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한국의 <국익>을 위해, 혹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도 당연히 괜찮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2001년 빈라덴의 9.11테러를 겪고, 다양한 논의를 보고 들으면서 <국익, 국가의 자존심>을 위해 무자비하게 희생된 많은 미국시민들과 테러에 대한 미국의 보복으로 전쟁아닌 전쟁을 겪으며 세상사가 각박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거대담론의 폐혜를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1만명의 죽음>이라는 현상이 벌어졌을 때, 전쟁 혹은 재난이나 사고로 1만명이 죽은 1가지 사건, 전쟁이 아니라, <1만개의 개별서사>가 존재한다는 관점을 취하게 되었다.
그래서 9.11테러 그 이후에 벌어진 한국의 2014년 4.16 세월호 사건이나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을 때, <희생자들의 개별서사>에 집중하게 되었다.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친구들에 대한 우리의 기도는 <거대담론이나 정치논리>로 뭉개지거나 추켜세워져서는 <위로의 기도>가 효과적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SNS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이나 현장의 관계자들 혹은 직접 친분이 있는 사람들 등 관념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실체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듣고자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자 한다.
꼭 큰 사건처럼 뉴스에 나오지 않더라도 지인들의 어려운 상황이나 곤경을 보면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기도를 하면 하느님이 들어주고 응답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다만, 하느님께, 예수님께, 음성언어이든 속으로 하는 기도이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기도를 드리다 보면 나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와, 자세, 삶의 관점> 등을 변화하게 해주고 선한 영향력이 개인인 <나> 자신으로부터 퍼져나가 행동으로 실천할 용기를 준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