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2 거대담론에 대한 불편함과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기도하는 나 거대담론에 대한 불편함과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기도하는 나 청소년기에 거대담론에 심취하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의 뜻을 알고 싶어하고 얘기하길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에 대해 생각하고 알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한국의 을 위해, 혹은 해도 당연히 괜찮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2001년 빈라덴의 9.11테러를 겪고, 다양한 논의를 보고 들으면서 을 위해 무자비하게 희생된 많은 미국시민들과 테러에 대한 미국의 보복으로 전쟁아닌 전쟁을 겪으며 세상사가 각박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거대담론의 폐혜를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이라는 현상이 벌어졌을 때, 전쟁 혹은 재난이나 사고로 1만명이 죽은 1가지 사건, 전쟁이 아니라, 가 존재한다는 관점을 취하게 되었다. 그래서 9.11테러 그 이후.. 2024. 5. 4. <나는 얼음 속의 씨앗이었다.> 20180310 감당할 만큼의 공감이나 감당할 만큼의 이해는 무엇일까? 그러한 공감과 이해는 정말 진정한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난 이제 만 37세가 다가오는데 그 기간 동안 눈과 귀와 입을 막고 펑펑 울었던 시기가 있었다. 실체가 없던 나는 비유와 루머로 세상의 온갖 일들로 비유당하곤 했고, 떠도는 온갖 악이라 생각되는 것들로 비유를 하면 내가 상처받을 것이라 세상은 생각하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판타지만 같던 비유에 상처를 받기에는 튼튼한 샌드백처럼 너무 덤덤하였다. 그들이 내가 그 악의 중심에 있길 (사실여부와 진실여부와는 별개로) 바라는 비유들은 1차적으로는 심드렁하게 생각하였다. 그것들의 이면에 있던, 2차적으로 사유를 해야 이해가 가능할 증오와 분노와 질시를 직관할 수 있던 나에게는, 그것.. 2018. 3. 10. 이전 1 다음